한국에서 맞는 두번째 주말 나는 고향에 한 번 더 내려갔다.
"울엄마가 너 많이 보고싶어 하시니까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돼."
고등학교때 절친인 '뿐'양의 요청이었다.
그날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집밥으로 저녁식사를 맛나게 하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겪은일을 이미 대충 알고 계셨지만 직접 들으시고는 혀를 차며 분노하셨다.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찾은 행복에 크게 격려를 해 주셨다.
"아휴... 나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랑 인연을 끊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난거니까 결국에는 오히려 잘 된거 맞지? 고생이 많았겠다 정말..."
"엄마, 얘는 20대때 필리핀에서 고생한거하며 숱한 일을 많이 겪었어. 다 듣다보면 진짜 눈물난다니깐."
뿐의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뿐을 바라보시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셨다.
"...그러는 우리 딸은 언제 어른되려나..."
외동딸에 여전히 싱글인 내 친구 '뿐'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부모님께서 워낙 금술이 좋으셔서 학창시절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다. 이제는 어엿한 영어학원 원장이 된 내 친구는 이제 부모님과 셋이서 단란하게 여행도 다니며 언제나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30대때는 나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ㅋ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여전히 화목하고 단란한 이 세식구가 그저 행복해 보인다.
어머니의 한숨섞인 푸념에 내 친구는 입을 삐죽했고 곧 두사람은 유치하게 투닥거리며 만담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때랑 변함이 없다ㅋㅋㅋ 그때나 지금이나 둘은 허물없는 베프사이인것이다.
"어머니, 뿐은요 학교다닐때 맨날 자기는 데릴사위 아니면 결혼 안할거랬어요. 자기가 결혼하면 부모님 외로우시다고 꼭 부모님이랑 같이 살수있는 남편 아니면 안된대요. 그래서 아직 결혼을 안했나봐요. 그런 남자가 흔치는 않죠?"
깜짝 놀란 어머니께서 딸을 돌아보시며, "진짜로? 나는 처음 듣는데?" 라고 물으셨고 뿐은 쑥스러운듯 나를 한 번 흘기더니 노코멘트로 긍정했다. 어머니 표정이 세상 밝아지셨다. 싱글벙글~
뿐은 효녀랍니다요. 부모님 걱정에 일부러 결혼 안하는걸거예요. 이거 맞나...뿐?
저녁 식사 후 뿐이랑 나는 야경이 예쁜 까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까페가 문을 닫을 무렵에는 집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서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7년만에 만난건가? 그러니 할 이야기가 산더미다.
시간이 멈춘것 같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우리는 유치한 농담을 하고 깔깔웃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보고 또 보는것같이 편안한 친구.
부모님도 우리 모습도 우리 눈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은것 같다. 어째 하나도 안 변했누.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한번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식사를 맛나게 먹었다.
집을 나올때 어머니께서는 다음에 언제 또 보냐며 다음에 오면 두 밤 자고 가라고 하시며 나를 두 번이나 안아주셨다.
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리는 하남으로 향했다. 우리들의 또다른 친구 '쏭'을 만나러-
오래전 갓 운전면허를 딴 뿐이 겁도없이 차를 렌트해서 우리 모두를 데리고 보성으로 향했던 스므살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뿐은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등짝을 시게 맞았다고 했다ㅋㅋ
쏭까지 오면 옛날 추억이 더 많이 떠오르겠네.
한국 오길 잘했다.
이전 포스팅 보러가기
'사는 이야기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국 오늘 주인공도 할머니 (12) | 2025.05.13 |
---|---|
우리 할머니의 그림(?) 자랑 (14) | 2025.05.12 |
필터링 없는 우리 할머니 화법 (24) | 2025.05.11 |
친구들덕에 한우 오마카세를 먹어봄 (9) | 2025.05.10 |
든든한 언니들이 있다. (9) | 2025.05.07 |
"여보, 친구들이랑 저녁먹게 십만원만 부쳐줘 봐" (15) | 2025.05.06 |
고향에서 옛 추억을 소환하다 (17) | 2025.05.05 |
벚꽃 아래서 가족 소풍 (11) | 2025.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