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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라끌렛먹고 스피드게임하면서 배꼽이 빠졌던 주말 저녁

by 요용 🌈 2024. 10. 28.

이전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30, 40, 50대가 모여 샴페인에 보드게임을 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렸던 보드게임을 끝낸 우리는 드디어(?) 저녁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라끌렛 그릴이 식탁 한가운데에 올랐고, 오이, 파프리카, 토마토, 바게트, 엉디브, 계란, 버섯이 올라왔다. 계란도 라끌렛에 익혀먹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빠질수 없는 찐감자! 

샤퀴테리도 엄청 많았고 연어도 있었다. 

라끌렛도 일반 라끌렛 뿐만 아니라 매운 라끌렛, 버섯 라끌렛도 있어서 골고루 맛보았다. 역시 버섯을 익혀먹으니 너무 맛있네. 

버거씨랑 내 친구들이랑 다 함께 즐겁고 편하게 어울리는 이 자리가 나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무엇보다 버거씨가 편안하게, 마치 자신의 친구들을 대하듯 내 친구들을 대해주니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부엌에 갔을때 알마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 버거씨 너무 좋아. 스테판도 버거씨 참 좋아해." 
 
그 말에 에리카가 말했다. 
 
"나랑 마이크도 버거씨 좋아해!" 
 
"응 저사람도 너희들 다 좋아해." 
 
내가 자리로 돌아왔을때 남자들끼리 무언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평소 조용하게 있는 마이크가 유독 말을 혼자서 많이 하고 있는 점이 신선했다. 내가 버거씨 옆에 돌아와서 앉았더니 버거씨가 나에게 말했다. 
 
"나 오늘은 말 덜하고 더 많이 듣고 있어. 못믿겠으면 물어봐." 
 
그 말에 다들 웃었다. 이 아저씨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네. 
 

 

계란도 하나씩 구워먹고나니 진짜 배가 너무 불렀다. 
 
하지만 디저트는 먹어야쥐! 
 
버거씨가 사온 라즈베리 케잌을 들고 나오는 알마의 표정이 한껏 상기돼 있었다. 버거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생일때 이게 그렇게나 맛있었다면서 말이다.

스테판에게 자르라고 했더니 이건 버거씨가 가져왔으니까 버거씨가 잘라야 한다네? 
오빠 내꺼는 더 예쁘게 잘라줘야 돼~

응 맛있다. 뭔가 가볍고 산뜻한 느낌이라 무거운 라끌렛을 먹고난 이후에 먹기 딱 좋았다. 
 
디저트를 다 먹고 소화용 독한술도 한잔씩 마시고 난 후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밤 11시가 다 돼 가네? 이제 슬슬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리카랑 알마가 게임을 또 하자고 나섰다. 
 
"Time's up 하자!" 
 
이건 우리가 프랑스어를 배울 때 자주 했던 낱말맞추기 게임이다. 
 
"벌써 열한신데 게임을 또 하자고?" 
 
"내일 너 출근 안하잖아~ 하자하자~~" 
 
다들 원하기에 결국 나도 수락했다. 뭐 하루쯤 늦게 자도 되겠지... (내가 노인같이 일찍 자는 습관이 있어서 ㅋ)  

알마가 곧장 볼펜이랑 종이를 가져왔다. 
 
각자 단어를 3개씩 아무거나 (누구나 알 만한 쉬운 프랑스어 단어로) 적은 후 접어서 냈다. 나는 토끼/남한/라끌렛을 적었다. 그런데 에리카는 카피바라를 적어내서 우리 중 세 명이나 무슨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고, 알마는 심지어 독일어 단어를 혼동해서 잘못 쓰는 바람에 원성을 샀다ㅋ 이것도 재미의 일부분이었다. 
 
세 명씩 두팀으로 나눴는데 나는 알마, 버거씨랑 한 팀이 되었다. 
 
첫번째 라운드에서는, 팀당 한명씩 단어 한장을 이마에 붙이고 그 단어가 뭔지 맞춰야 한다. 나머지 팀원에게 스무고개처럼 질문을 하는데 나머지 맴버는 yes/no로만 대답해야 한다. 1분 안에 맞춰야 한다. 
두번째 라운드에서는 말을 하면 안되고 동작만으로 단어를 설명해야 하고 세번째 라운드에서는 동작은 하면 안되고 단어 딱 하나만 말해서 맞춰야 한다. 똑같은 단어들로 1~3라운드를 진행하기때문에 첫번째 라운드가 가장 오래 걸린다. 
 
그런데 우리 버거씨가 복병이었다. (이 게임 안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정말 미친듯이 웃었다. 버거씨 때문에.) 
 
동작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키 큰 사람이 앞에 혼자 서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우선 너무 웃겼다. 별것도 아닌데 본인은 혼자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는 듯 했다ㅋㅋㅋ 로켓을 설명한답시고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ㅋㅋㅋ 본인이 너무 못해서 미안하다며 또 자책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자기만 너무 못한다나. 나는 이 섬세한 남자를 위로는 못해줄 망정 자꾸만 웃음이 났다. 남한이라는 단어에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걸 어떻게 하냐며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절부절했다. 나중에 나머지 인원들이 일제히 나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쳐를 보여주자 버거씨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나 정말 이 게임 너무 못 해...ㅠ.ㅠ"
 
세번째 라운드에서는 한 단어로만 해당 낱말을 설명해야 한다. 버거씨 차례가 되었을때 나는 살짝 못미더운 버거씨를 향해 "준비 된거 맞지?" "동작은 하면 안되고 한 단어로만 설명해야 된다?" "준비된거 맞아?" 하며 여러번 확인을 했다. 버거씨는 자신있게 알았다고 말했다. 에리카가 1분 타이머를 돌리기 시작했고 버거씨는 첫번째 낱말에서 또 로켓을 만났다. 입으로 슈웅! 하면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버거씨. 아 웃긴데 나 좀 챙피해 ㅋㅋㅋㅋㅋㅋㅋ 다들 빵 터지고 버거씨는 얼굴이 빨개졌다. 알마는 남들이 웃든 말든 "로켓!" 하고 단어를 맞췄고 나는 "준비 됐다며~!! 이해 했다고 했잖아!" 외치면서 웃느라 쓰러졌다. 버거씨는 민망해하면서도 다음 단어를 뽑았다. '라끌렛'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입으로 슉슉 의성어를 내면서 주걱으로 긁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는 알마도 쓰러졌다. 다들 숨도 못 쉴 정도로 웃느라 초토화돼서 1분이 그냥 흘렀다. 
 
눈물나게 웃었네 진짜. 
버거씨는 귀까지 빨개져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ㅋㅋ 챙피하게 해서 미안하단다 ㅋㅋ 본인도 웃긴지 같이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세번째 라운드에서 버거씨가 첫번재 주자였다면 또 이해하겠다. 이미 나랑 에리카 마이크가 하는걸 뻔해 다 지켜봤으면서ㅋ 
 
모두가 좀 진정이 되었을때 내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평소에는 이 남자, 이보다 똑똑한 사람이야. 믿어줘." 
 
그 말에 다들 또 쓰러졌다. 
 
"내가 챙피해?" 
 
버거씨의 질문에 나는 말했다. 
 
"그냥... 꼭 말해줘야 할 것 같았어. 당신이 똑똑한 사람이라는거 말이야. 아니면 모를까봐 ㅋㅋㅋㅋㅋ" 
 
버거씨만 놀림거리가 될 뻔 했는데 마지막에 알마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서 놀림받는 영광을 버거씨와 공유했다. 낱말이 '풍선'이었는데 알마는 동작없이 한 단어로만 설명해야 된다는걸 순간 까먹고는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에 사용하는거!' 하면서 양팔을 허공에 흔들어댔다. 우리는 웃느라 단어를 맞출 생각도 못했고 알마는 본인이 생각해도 웃긴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때는 버거씨가 제일 신나서 알마를 놀려댔다ㅋㅋㅋ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알마네 집을 나왔는데 우리는 게임의 후유증때문에 계속해서 웃었다. 이 게임 안했으면 어쩔뻔했나 진짜ㅋ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도 버거씨는 이따금씩 혼자 웃었다. 
 
"오늘 나 진짜 재미있었어! 이만큼 웃어본게 얼마만인지!" 
 
"그러고도 웃음이 난다고?" 
 
예상못했던 내 농담에 버거씨는 더 심하게 웃어댔다. 
 
"사실 나 오늘 당신이 자랑스러웠어. 당신 덕분에 다들 너무 즐거웠잖아. 당신같은 사람은 이 게임에 꼭 필요한 존재야. 이 게임 할 때마다 당신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는 집에 도착할때까지 차안에서 계속 웃었다. 

내 친구들도 지금쯤 버거씨를 떠올리면서 웃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사람들이랑 딱 요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