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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30, 40, 50대가 모여 샴페인에 보드게임을 했다.

by 요용 🌈 2024. 10. 27.

토요일날 알마가 나와 버거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에리카랑 마이크도 초대했어. 우리집에서 게임도 하고 라끌렛 먹자.]
 
[좋아! 나 뭐 가져가면 될까?]
 
[혹시 괜찮으면 전에 내 생일날 가져왔던 라즈베리 케이크 또 사올 수 있어? 진짜 맛있었거든.]
 
[알았어. 버거씨한테 사오라고 할게! 몇 시까지 갈까?]
 
[너 퇴근하는대로 곧장 와 줘. 게임이 시간이 좀 걸리는거라 빨리 올 수록 좋아.]
 
대체 무슨 게임을 하려는거냐...ㅋ 
 
버거씨한테 말했더니 매우 좋아했다. 내 친구들이 버거씨를 좋아하는 것처럼 버거씨도 내 친구들이 너무 좋단다. 별일 아닌것 같아도 나는 이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다. 
 
토요일 오후 버거씨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라즈베리 케이크와 샴페인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신나는 토요일이구나!!
 
네시 반까지 가기로 했는데 5분 정도 늦었다. 알마한테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무슨소리냐며 에리카는 아직 연락도 없다고 했다ㅋㅋ 한결같은 필리핀 커플이다. 
 
알마네 거실에 새로 들인 벽난로 속 장작들이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2층에도 벽난로가 하나 더 있다. 태양열까지 사용하는 이 집에는 전기세 걱정이 없겠네.

테이블 위에 분홍 오키드 화분과 함께 호박과 호두등이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거 전부다 우리집 정원에서 수확한 것들이야. 너도 혹시 원하면 갈 때 호박 좀 줄게." 
 
장식용으로 쓰라길래 나는 거절했다. 코딱지만한 내 아파트에는 웬만하면 아무것도 들이고 싶지 않다;; 맛있는거면 챙겼을테지만ㅋ
 
잠시후 에리카네 커플이 도착했고 우리는 알마네 커플이 안내하는대로 윗층으로 올라가서 아페로를 마시기로 했다. 

와~ 언제 다 준비한거냥~ 역시 요리를 좋아하는 알마는 언제나 푸짐하게 준비한다. 

우리는 둘러앉아 샴페인을 마셨다. 
 

구운 가지를 말아서 만든 이 요리 정말 맛있었다. 

가지 위에 뭔가 소스를 발랐는데 그게 뭔지 맞춰보라는 알마의 말에 우리는 각종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정답은 못맞췄다. 
 
"이거 호두를 갈아서 얹은거야! 나 요즘 산책하면서 호두를 엄청 많이 주워왔거든." 

호두가 이런 쟁반으로 네개나 있었다. 뿌듯해 할 만 하네. 
 
스테판은 버거씨에게 한국어 할 줄 아는게 있냐고 가볍게 질문을 했다. 버거씨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아는 말들을 침착하게 모조리 읊어서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안뇽~ 잘자~ 고마워~ 감사합니다.... 빨리빨리~"
 
진지한 표정과는 반대로 발음이 너무 귀여워서 나 혼자 막 웃었다. 사랑스러운 중년이로구만. 
 
잠시 후 우리는 인공지능과 전기자동차 대한 토론이 오갔다. 운전자 없이 100% 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에 대한 의견이 달랐던 알마와 버거씨 사이에 특히 열띤 대화가 오갔다. 나랑 에리카는 우리가 지금 달프 수업을 듣고 있는게 아니냐며 소곤거렸다. 우리 알마 프랑스어 진짜 많이 늘었구나!

그때 스테판이 손뼉을 치며 우리의 토론을 중단시켰다. 
 
"자! 여러분, 이제 내려가서 게임을 시작합시다!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임이라 저녁먹기전에 끝내려면 지금 해야 돼요." 
 
대체 무슨 게임을 하길래 부부가 이렇게나 진심인걸까. 우리는 스테판이 시키는대로 샴페인 잔을 들고 아랫층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아 이 게임...
내 생일날 딱 한판을 했을 뿐인데 세시간이 넘게 걸렸던...  특히 그날 알마는 룰을 잘 몰라서 스테판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야만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스테판이 있으니까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지. 
 
알마는 저녁 준비를 하겠다고 했고 우리 5명만 게임을 시작했다. 스테판은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하지만 진지하게 룰을 설명해 줬다. 버거씨는 또 혼자 눈빛이 이글거리는 걸 보니 승부욕이 벌써부터 불타오르나보다. 
 
나는 빨간색을 골랐다. 
각자 주어진 목적지를 향해 더 많은 철로를 건설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지명이 독일어로 돼 있어서 생소한 이름이 너무 많았다. 일부는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음ㅋ 
 
손에 쥔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철로를 건설할 수 있는건데 버거씨는 혼자서 카드를 내려놓지도 않고 계속 더 가져가기만 했다. 그런 버거씨를 보고 우리는 한마디씩 놀리면서 웃었다. 
 
"손에 쥔 그 많은 카드는 언제 쓸거야?" 
 
"으악 저렇게나 많은 카드를 왜 계속 쥐고 있는거야?" 
 
"ㅋㅋㅋㅋ 한 손에 다 잡기도 어렵겠다." 
 
우리가 아무리 놀려도 버거씨는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 했다. 
 
"조금만있으면 다들 이해하게 될거야. 내 의도를...." 
 
그 말에 우리는 더 빵터졌다. 왜 저렇게 진지한거냐며 ㅋㅋ 
 
"게임은 게임일 뿐이야. 가볍게 하자고?" 
 
버거씨는 웃지 않았다. ㅋㅋ 참 놀려먹기 좋은 타겟이다. 
 
잠시후 버거씨는 8칸의 선로를 한 번에 건설하는데 성공을 했다. 우리는 깜짝 놀랬고 버거씨는 손에 쥐고 있던 대부분의 카드를 한번에 내려놓으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거봐, 내가 뭔가 보여줄거라고 했지? 8칸짜리는 진짜 복불복이었는데 다행히 성공했네. 휴!" 
 
그때부터 버거씨는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다른 사람들을 놀려먹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끙끙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게임은 게임일 뿐이야, 가볍게 하자고?" 하면서 자기가 들었던 말을 고대로 돌려주었다.
 
"8칸 성공하고나니까 이제서야 웃는거 좀 봐ㅋㅋㅋ" 
 
내 말에 모든 사람들이 맞다고 웃었다. 버거씨가 제일 크게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ㅋㅋ
 
최종적으로 스테판이 이겼고 버거씨가 2등을 했다. 알마는 버거씨더러 우승자나 다름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스테판은 이 게임을 하도 많이 하기 때문에 공정하지가 않았고, 오늘은 게임 진행자일 뿐이었다면서 말이다. 버거씨 어깨가 더 올라갔다. 
 
알마가 준비한 라끌렛이 식탁에 올랐다. 이제 저녁을 먹읍시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