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쌍무지개

토요일날 원래 나는 16살 소년 친구로부터 그의 어머니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었다. (나는 소년이랑 친구지만 그의 어머니는 나랑 동갑이다.) 버거씨도 함께 파티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하필이면 주말에 둘째 아들이랑 어딜 같이 가줘야한대서... 결국 나는 파티에 가는 대신 티옹빌로 가게 되었다. 
 
티옹빌역으로 나를 마중 나온 버거씨는 거듭 사과를 했다. 
 
"나 때문에 파티에도 못가고 여기로 오라고 해서 미안해. 우리 아들들이랑 다 함께 주말을 함께 보내는데 동의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괜찮아. 생일파티보다 더 재미있게 해 줄거잖아?" 
 
"아.... 최선을 다해볼게..."
 
버거씨를 당황하게 만드는건 정말 재미있다. 
 
아들들을 픽업하러 가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거씨가 소리쳤다. 
 
"저기 좀 봐!!" 

우와... 무지개다!! 
 
심지어 선명한 쌍무지개다!

"와..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는 처음 보는것 같다." 

무지개가 너무 커서 한 화면에 담기도 어려웠다. 줌을 땡겨 찍으니 그때의 웅장함이 사라지네. 진짜 크고 예뻤는데!! 

버거씨랑 아들들이 트렁크에 짐을 싣는 동안 나는 차안에서 노래를 들었다. 필리핀 가수 South border의 Rainbow. 필리핀 살 때 즐겨 듣던 노래인데 무지개를 보니까 갑자기 떠올랐다. 

아... 가사가 이런 말이었구나...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앞에두고 노래 가사를 음미하고 있자니 나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에 확실한건 없어.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 지 절대 알 수 없어. 
우리는 모든 걸 다 가질수 없어. 
인생은 계속되고 계속돼. 
그러니까 그냥 웃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게. 
새들의 노래를 들어.
나비의 색깔을 봐. 
이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이야. 
지금 고통이 있어도 모든게 다 잘될거야.
밤이 있고 낮이 있어
비온 뒤에는 항상 무지개가 있어. 
 
 
나의 20대가 생각난다. 
필리핀에서 젊음을 받쳐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절친에게 배신을 당하고 고소까지 당했다. 내 인생에 가장 암울했던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 가장 눈부셨던 기억들 또한 그 시절에 가득하다. 
 
40대가 되어서 또 한번, 이번에는 더 큰 폭풍우를 내 인생에서 맞닥뜨렸는데 불과 몇 달 지난 지금 나는 이렇게 눈부시고 선명한 무지개를 마주하고 앉아있네. 
 

버거씨네 집으로 다 함께 가는 길, 버거씨가 나더러 또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자꾸만 묻네. 
 
"나 진짜 듣고 싶은거 없는데..." 
 
"아무 가수나 말해봐. 오늘은 네가 듣고 싶은걸로 듣자." 
 
"아무나...? 음.... 블랙핑크?" 
 
"블랙... 뭐??" 
 
"하... 블랙핑크도 모르냐?" 
 
버거씨는 뒷좌석 아들들에게 블랙핑크를 아는지 물었고 아들들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봐, 나만 모르는게 아니잖아." 
 
어쨌거나 버거씨는 블랙핑크 노래를 틀었다. 그러자 뒷자석 아들들이 일제히 말했다. 
 
"아~~ 나 이거 알아." 
 
"이 노래는 다 알지. 학교에서 애들이 맨날 듣는거잖아" 
 
그 말에 내가 버거씨를 보면서 말했다. 
 
"거봐 당신만 모르잖아. 블랙핑크" 
 
버거씨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이제는 알아. 블랙핑크."
 
하하하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중년남이다.
 

 
나 혼자 폭풍우에 맞서고 있을때 무지개처럼 나타나 준 버거씨는 이제 자신이 내 보호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인생살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