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네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피곤해서 늦잠을 잘 예정이었는데 다음날 이른 아침 버거씨의 나직한 비명소리에 잠을 깨고야 말았다. 사실 너무 졸려서 눈은 안떠지는데 버거씨의 목소리가 심각한것 같아서 눈을 뜬 시늉을 해야만 했다.
"무슨일이야....?"
"맙소사... 내 차가... 견인됐나봐... 아.... "
왜 견인됐지??
버거씨는 앱으로 차의 위치를 추적했고 위성카메라로 어딘가 광활한 낯선 주차장에 놓여있는 본인의 차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왠지... 어제 새벽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견인되는 차들이 여기저기 보이더라니...
그때 나는 버거씨한테 저 차들은 왜 끌려가는거냐고 물었었는데 버거씨는 "불법주차를 했을거야. 아니면 차를 삐딱하게 댔거나." 라고 대답을 했었다. 다른 차들이 견인 돼 가는걸 보고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우리 둘다 너무 피곤해서 빨리 집에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던것 같다.
버거씨는 아직도 차가 왜 견인된건지 이유를 몰랐다.
"주차도 잘 했는데... 대체 왜... 사실 내가 제일 걱정되는거는 차를 견인할때 워낙 차를 함부로 다루니까 긁힘이나 파손이 있을까봐... 아..."
어딘가로 전화를 하던 버거씨는 다행히 차가 견인되어 있는 곳에 전화 연결을 하는데 성공했다.
"오늘 OctoberRose라고 여성암환자들을 위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견인한거래. 앞에 어떤 사인도 보질 못했는데! 차를 찾아오려면 138유로를 내야된다네... 그냥 나는 차만 멀쩡하면 좋겠다..."
아... 낭시 어젯밤 돈 많이 벌었겠네.
"같이 가줄까? 걸어가면 엄청 멀어. 버스타면 25분정도 걸리네."
걸어가면 40분이 걸린다고 지도에 뜨는데 버거씨는 혼자서 달려가겠다며 뛰쳐나갔다. 아침일찍 깨워서 미안하다며 더 자라는 말과 함께.
버거씨는 한시간쯤 후에 돌아왔다.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다행히 파손된 곳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거기에는 나처럼 이른 아침부터 차를 찾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더라. 예상했겠지만 대부분 화가난 표정이었지. 남자직원은 내가 차 주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서류를 달라고 했거든? 다행히 휴대폰에 서류들이 있어서 보여줬는데 파일로는 안된다는거야. 근데 옆에 있던 여직원이 다 인쇄를 해 줬어. 구글 리뷰에서 보니까 이곳은 정말 불친절하고 기분나쁜 곳인데 여직원이 친절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누군가가 써놨더라. 딱 내 심정이었어."
나는 버거씨에게 줄 뜨거운 차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나는 주차할때 금지사인이나 마라톤 안내 표시를 못봤다고 말했어. 최소 테이프로 마라톤 코스 일대는 표시를 해놔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남자직원이 퉁명하게 말하더라. 일주일 전부터 안내가 되었다고요! 나는 낭시 사람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았겠냐고 대꾸했지. 하긴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도 이른아침부터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을 테니까 스트레스가 심하겠다싶어서 더이상은 말 안했어."
그래도 벌금은 너무 비싸다 ㅠ.ㅠ
우리는 집근처 베트남 식당에 가서 점심으로 보분을 먹었다. 요즘 우리가 꽂혀있는 단골 메뉴다.
식사비는 버거씨 몰래 내 카드로 결제 했는데 버거씨가 왜 그랬냐고 물었다.
"오늘 아침에 벌금으로 지출이 컸잖아. 이 정도는 나도 사줄 수 있어."
별것도 아닌데 굉장히 고마워하는 버거씨.
사실 버거씨의 차는 일전에 낭시에서 더 심한 고초를 겪은 경험이 있다. 밤에 스타니슬라스 광장 주차장에 세워 놨었는데 차 뒷부분을 누가 심하게 파손을 해놓고 도망을 간 것이다. 누군가 아마 술먹고 한 번 박았는데 생각없이 그대로 전진+후진을 반복한 듯한 심각한 파손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보쥬에 가기로 했던터라 배터리를 아끼려고 비디오녹화를 꺼놨던것을 버거씨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제는 그냥 기차타고 와. 자꾸 이런일이 생기니까 내가 미안하다."
"나 아침에 그 소동을 겪었다는 걸 거의 까먹고 있었다는거 알아? 너랑 같이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편하고 행복해서 나쁜일은 금방 잊혀지나봐.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사랑의 힘인가!?"
하하 내가 봐도 좀 대견하기는 하다. 아침 이후로 인상을 쓰거나 불평 한 번을 안했다. 이미 발생한 일은 어쩔수 없지만 그 일로 인해 남은 하루까지 망쳐버릴수는 없다고 말하는 버거씨. 칭찬해~
요즘 스타니슬라스 광장에는 멋진 크리스탈 장식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이래도 낭시에 오는게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난 낭시가 점점 좋아져. 조만간 낭시에 아파트를 구해서 너랑 더 오래 지낼수 있도록 해 볼게."
다행이다. 이래도 낭시가 좋다고 말해주니.
**추가: 2주후 버거씨는 추가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불법주차 벌금이라면서 34유로를 또 내야 했다면서 그래도 애써 껄껄 웃는 버거씨. 아이고야... 낭시는 마라톤때마다 부자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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