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이사할 아파트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일단 가격, 위치, 에너지효율이 마음에 들어서 어렵게 헝데부를 잡고 방문해 보면 세탁기 설치가 불가능하다던가 다른 하자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한 곳 있긴 했었는데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놓쳐버리기도 했고 또 어떤집은 중개인이 헝데부를 잡았다가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버거씨는 나더러 조급해 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실 나도 그다지 조급하게 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 사는 집이 추워서 너~~무 추운데다 집주인이 너무 안하무인 무대뽀 단세포같은 인간이라 대화가 전혀 안되니 그 부분만 좀더 참고 견뎌야겠지;;
"넌 세상 최고의 갸헝(보증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그리고 넌 세상 최고의 세입자야. 너처럼 집을 깨끗하게 잘 쓰는 사람이 또 어디있다구. 우리같은 사람들을 놓친다면 그건 바보라서 그런거야."
"하하 최고의 갸헝이랑 최고의 세입자라구?"
"그렇지! 우리는 최고의 한팀이야.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이루지 못할 건 세상에 없어. 내 말 믿지?"
그 주말 버거씨는 나에게 자기소개 메시지를 만들어주었다.
대부분 스튜디오아파트의 세입자들은 학생들인데 그들에 비해 내가 가진 강점을 처음부터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씨의 전략이었다.
[봉쥬, 저는 장기 임대를 위해 귀하의 숙소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 프로필과 관련된 몇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재무 정보는 사이트내 임차인 파일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 현재 낭시 시내 요식업 정규직 근무중입니다.
- 2020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장기 비자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 23년 정규직 계약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확실한 보증인이 있습니다.
- 저는 차분한 성격이고 집을 깨끗하게 관리합니다.
저의 연락처는 xxxxxxx입니다. 방문 가능 일정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런 후 버거씨 제안대로 매물사이트내 내 계정에 우리 두 사람의 재무관련 서류들을 모두 업로드해두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을때마다 나는 버거씨가 코칭해 준대로 준비된 메세지를 첫인사로 발송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효과가 있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현대식 건물에 저렴하고 넓은 스튜디오가 나왔는데 방문 헝데부를 잡은 것이다.
평일이라 혼자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났다. 젊은 중개인은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인상이었지만;; 집은 마음에 들었다. 꽤 넓고 세탁기까지 있고 에너지효율도 좋은데다 위치도 좋았다. 나는 중개인에게 필요한 서류를 최대한 빨리 보내줄테니 최대한 빨리 필요한 리스트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드디어 찾은건가!
주말에 만난 버거씨는 역앞에 있는 이 건물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그 건물에 살고있는 세입자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어."
"거기 외부인은 못들어가는데?"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누군가 출입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 걸면 되지. 나만 믿어."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그 건물 앞에 서서 입구 주변을 서성이거나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앞은 한창 공사중이라 평소보다 더 어수선하다. 덕분에 길이 좁아져서 아파트 입구앞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음... 나 여기 뭔가 마음에 안들어... 저 사람들 너무 수상해."
"아 나 여기 역앞에 앉아서 마리화나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어. 구걸하는 사람도 많아 이쪽에는"
"저기 앞에 앉아있는 아랍남자 보이지? 건물앞에 한참이나 저러고 앉아있잖아. 아무래도 마약을 사고 파는것 같애. 저 남자가 오기전에는 다른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서로 대화를 몇마디 나누더니 교대를 하더라고. 그리고 저쪽 테라스에 앉아서 졸고 있는 아프리카여자 보여? 아무리 봐도 맑은 정신이 아닌것 같지."
버거씨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다 의심하는것 같았다. 심지어 근처에서 전화통화하는 사람의 대화소리도 엿들었다ㅋ
"방금 저 아랍남자가 하는 말을 들었어. [우리는 은밀하게 일한다]고 말했어. 그게 뭐겠어? 거래를 의미하는거지!"
버거씨는 내가 역앞에 사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큰길만 건너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데 역 앞에는 확실히 구걸하는 사람이나 아랍인들이 많긴하다.
그때 건물로 들어가는 아프리칸 청년이 있길래 내가 얼른 인사를 건넸다.
"봉쥬. 여기 사시나요?"
"네 그런데요?"
"아, 제 여자친구가 이곳 아파트 입주를 고려하고 있는데 혹시 안전한 곳인지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왔거든요. 주변에 위험한 요소는 없을까요?"
버거씨의 질문에 청년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주었다. 낯선이들에게도 어찌나 친절한지!
"저는 여기 아파트에 산 지 3년째인데 만족해요. 주변에 위험한건 없고 요즘 공사때문에 노숙자들이 입구에 종종 앉아있는 경우는 있어요. 그럴때면 비켜달라고 하면 비켜줘요. 위험하다고 느낀적은 딱히 없어요. 대부분 학생들이 살고 있는데 파티를 하거나 시끄러운 경우도 없었고요. 아마 만족하실거예요."
청년의 말을 듣고 우리는 꽤 안심을 했다.
"내가 좀 과대망상을 한 것같기도 해. 하지만 어쩔수 없었어. 네가 살 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확인할 책임이 나한테 있으니까."
아휴 우리 버거씨는 말도 참 감동적으로 한다.
버거씨 말대로 버거씨랑 있으면 이 세상에서 못 할 일이 없을것만 같이 든든함을 느낀다. 세뇌를 당한건가 내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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