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주전자로 팔팔 끓인 물에 화상을 입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가 없으므로 상세한 이유는 생략 ㅡㅡ;)
찬물에 잠깐 담궜다가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그냥 잤다.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수포가 올라오네.. ;;
집에 있는 연고도 바르고 가게있는 화상 연고도 자꾸자꾸 발라줬다.
냅두면 알아서 낫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간지러움이 동반되는걸 보니 감염이 걱정 되었다. 의사를 보려면 또 헝데부를 잡고 며칠을 기다려야 하니 퇴근길에 집옆에 있는 약국에 들렀다.
전에 봤던 예쁜 약사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올해 초 코로나에 걸려서 인후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을때 친절하게 도와주어서 기억에 남는다.
다리를 걷어서 화상 상처를 보여줬더니 약사 두 사람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음... 심하긴 심한가보다.
예쁜 약사 언니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갖가지 약들을 들고 나왔다.
"이건 뿌리는 스프레이인데 진정과 재생에 도움이 돼요, 그리고 바지에 닿으면 감염 될 수 있으니 이런 밴드같은걸 붙이는게 나을것 같아요."
근데 밴드는 화상 상처에 잘못 붙였다가 뗄때 약해진 피부가 같이 벗겨지는 상황이 겁난다고 했더니 그녀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집에 스테로이드 연고도 있고하니 진정 스프레이만 샀다. (11유로! 비싸네...)
그런데 결제를 끝낸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요 앞에 의사가 있거든요? 지금 저랑 한번 가보실래요? 예약은 안했지만 지금 바로 봐줄 수 있는지 제가 물어볼게요."
엥?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 준다고...?
그녀의 남자 동료가 나만큼이나 놀랜 눈으로 그녀를 휙 돌아봤다. 나도 속으로는 좀 놀랬다.
불만스러운 눈길을 팍팍 보내고 있는 남자동료에게 그녀는 "요 앞이니까 잠깐 갔다올게" 하며 이미 카운터를 빠져나오고 있었고(동료 약사는 뭐라고 궁시렁거리고 있었음) 나를 향해서는 "의사 처방전이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약들이 훨씬 많아요." 라고 말하며 앞장서서 약국을 빠져나갔다.
볼때마다 예쁘고 친절한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감동이다 ㅠ.ㅠ
같이 길을 건너가면서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한번 더 했을때 그녀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저 기억 안나요?"
"당연히 기억나지요. 지난 겨울에 약국에서 봤잖아요."
"아니요, 약국 말고... 우리 프랑스어 공부를 같이 했어요."
엥???
이렇게 예쁜 얼굴을 내가 기억못할리가 없는데... 도통 기억에 없다.
"같은 그룹은 아니었고 그냥 같은 시기에 다녔어요."
아...
같이 공부한 사이라니 우리는 바로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말했다. 그녀는 시리아에서 왔고 이름은 하갓이라고 했다.
"와, 프랑스에서 공부한거야? 약사로 취업하다니 정말 멋지다! 내 친구 네스마 혹시 알아? 그녀도 시리아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지금 프랑스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는데 정말 어렵게 성공했어!"
"아 네스마 나도 알지!!"
"다들 정말 멋지다!"
내가 다 자랑스럽네. 외국인으로서 전문직 취업이 그렇게나 어렵다던데 말이다.
결국 의사는 부재중이라 못 만났고 우리는 서로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길에 에리카한테 전화를 걸어서 사연을 들려주었더니 (에리카도 그녀를 모르겠단다) 다음에 가서 전화번호를 받아오란다. 친구들 만날때 초대하자고 말이다. (하갓이 히잡을 안쓰고 있다고했더니 에리카는 매우 반가워하며 잘하면 술도 마실지 모르겠다며 설레발을ㅋㅋㅋ)
음 그러게. 다음번에 내가 용기내서(?) 번호를 따 볼게ㅋㅋ.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집옆에 있는 약국에서 또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날줄이야.
세상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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