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끝낸 버거씨의 큰아들은 탁구를 치자고 했다.
버거씨는 내 눈치를 봤고 나는 신경쓰지 말라고 둘이 치라고 말했다.
내가 함께 치거나 적어도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주고 구경해 주기를 바랬겠지만... 나는 그냥 이 좋은 날씨를 즐기고 싶다오~
옆뜰 탁구대에서 탁구공이 양쪽을 오가는 소리가 핑퐁핑퐁 들려왔지만 나는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 좋았다.
아! 깻잎 싹이 아직 안났다고 했던가?
내가 깻잎 심을 곳으로 다가갔더니 멀리서 버거씨가 외쳤다.
"내가 맨날 확인하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아직 소식이 없어."
소식이 없긴 왜 없냐ㅋㅋ
버거씨가 물을 잘 주고 있다더니 과연 촉촉하게 젖어있는 땅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소복하게 고개를 내민 싹들이 내눈에는 이리도 잘 보이는데?
역시 우리가 한곳에다 씨앗을 너무 왕창 뿌렸다ㅋㅋ
싹이 났다는 말에 버거씨가 탁구채를 든 채 한걸음에 달려왔다.
"오... 진짜다!!!"
정원 구석에 있는 사과나무에 가보니 애벌레가 잔치를 하고 있네... 난리났다.
열매며 이파리며 닥치는 대로 다 파먹고 거미줄같은걸 잔뜩 쳐서 그 안에 애벌래들이 오골오골거리고 있었다. 으...
집에 들어가서 한국에서 사온 적과 가위를 들고 나왔다.
버거씨가 정원일 할때 사용하는 장갑도 보이길래 같이 착용했다.
사과 적과도 했고, 벌레가 우글거리는 가지도 다 잘라버렸다.
벌레들아 잘가라.
나는 한시간 정도 나무에 붙어서 정성을 쏟았다.
열매가 작년에 비해 적다.
그래도 남은 열매라도 튼실하게 커주면 좋겠네.
탁구시합을 끝낸 버거씨가 달려왔는데 그때 뒷쪽 농장에서 트랙터가 엄청난 먼지를 뿌리며 요란하게 다가오고 있어서 나는 혼비백산하며 저 멀리로 도망갔다. 그 모습을 보고 버거씨가 깔깔 웃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사과나무 아래에 내가 자른 가지들이 엄청 많이 널부러져 있었다.
엄청 많이도 잘랐구나. 하지만 이렇게 해 줘야 햇빛도 바람도 더 잘 통한다고.
그리고 대부분 벌레가 우글거리는 가지들이니까 아까워하지 않아도 돼.
내 설명에 버거씨가 고마워하며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사과 나무가지들을 줍기 시작했다.
가을에 맛나는 사과를 먹기위해 징그러운 벌레들도 마다않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니. 우리 엄마가 보셨음 놀래시겠다.
버거씨네 정원에서 깻잎도 기르고 사과도 키우고.
농사의 로망을 그나마 여기서 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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