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혼자 종종 산책을 하던 그 공원으로 버거씨를 데리고 갔다.
한동안 이쪽 동네 가까이는 오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버거씨 손을 잡고 당당히(?) 그 동네를 가로질러 걸었다. 솔직히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마주치면 또 어떻다고?) 심장이 콩닥콩닥거리기도 했다.

버거씨한테 이제 내가 아는 모든 낭시의 공원들을 보여주었다.
이 공원에는 연못이 특히 예쁘다.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트램도 탔음) 애먹었으니 적당한 벤치에 앉아 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책을 꺼내들었다.


내가 쓰던 킨들 이북리더기를 잘 사용하고 있는 버거씨를 보니 뿌듯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고파졌던 나는 점심을 먹을만한 최고의 명당으로 버거씨를 데리고 갔다.
한때 이 공원을 혼자 다니면서 나중에 한국 식구들이 놀러오면 꼭 저기서 피크닉을 해야지 생각하곤 했었는데 버거씨 덕분에 그 소망이 절반 이뤄졌네.

오리와 백조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연못앞에 있는 테이블위에다 우리는 가방을 풀었다.


백조랑 흑조가 차례로 다가와서 우리에게 (엄밀히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끼리 다 먹을거지롱~ 안주지롱~
오잉? 그러고보니 전에는 안보이던 백조가 생겼다.

회색 백조. 아 우리말로 하니 뭔가 말이 안된다. 회색 스완이라고 부를까.
흑조랑 백조가 엄마아빠인가...?

흑조랑 나란히 한 다리로 서서 낮잠을 자는 모습도 참 신기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볼거리가 참 많아서 즐겁군.
그때 우리 테이블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뻔뻔한 새가 있었으니...

ㅋㅋ 얜 뭐지?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까꿍하는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ㅋㅋㅋ
몇번 그렇게 우리 눈치를 보다가 이 녀석이 푱! 하고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왔다. 방심하고 웃던 우리는 화들짝!

생긴것부터가 너는 좀 뻔뻔해보여...

버거씨는 정말 째째한 크기의 빵 부스러기를 모아다 주었다.
새는 가까이 오는 버거씨 손에 살짝 움찔하더니 이내 익숙한듯 주는대로 다 받아먹었다.
역시 간에 기별도 안가는 양이라...
버거씨가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에 대놓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음.

샌드위치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새때문에 버거씨가 깜짝 놀래서 얼른 뒤로 샌드위치를 숨겼다.

"안돼, 넌 이거나 먹어."
버거씨는 뿌시래기를 자꾸자꾸 줬지만 내가 봐도 뿌시래기 사이즈는 너무 째째해ㅋㅋ

"안돼! 안돼! 안된다고!"
"그래, 잘했어."
"안돼! 이 선 넘어오지마. 여기가 경계선이야."
버거씨는 새한테 계속해서 훈계를 했고 새는 자신을 상대해 주고 뿌시래기도 나눠주는 버거씨를 매우 친절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 했다ㅋㅋ 버거씨가 말해준 경계를 새가 넘어올때마다 버거씨는 "노! 노! 후루루룩 후루루룩"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새한테는 씨알도 안먹힌다.

얘 진짜 웃기네ㅋㅋ
발은 좀 징그러운데 자꾸 보다보니까 정든다.
나는 결국 바게트를 작게 잘라서 몇조각 줘버렸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데 작은 보상은 줘야지...

좀전에 물위에 있는 모습을 봤을때는 헤엄치는 모습이 딱 오리같았는데 걸어다니는 모습은 영락없는 닭이다.
버거씨 말로는 아마도 이 녀석 이름이 물에 사는 닭이 맞을거란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닭(poule d'eau)라고 검색했더니 진짜 나온다ㅋ 얘 이름은 뿔도(Poule d'eau), 물닭이 맞다!
암튼 오늘은 이 녀석이 우리를 너무 즐겁게 해 주었다.
버거씨도 나도 이녀석 덕분에 오늘 엄청 웃었다.
다음에 또 보자 친구!
이전 포스팅 읽기
프랑스 보쥬, 산행중에 만난 귀여운 염소떼들
그림같은 호숫가에서 피크닉을 했다.
모로코친구가 만들어준 원조 쿠스쿠스를 맛보았다.
처음보는 고양이가 내 무릎에 올라왔다.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룩셈부르크에서 짝퉁 한식 바베큐 (5) | 2025.06.11 |
---|---|
가끔 허술하지만 사람은 참 착햐... (13) | 2025.06.10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21) | 2025.06.09 |
한국어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는 버거씨 (feat. 듀오링고 저렴하게 이용하는 법) (9) | 2025.06.08 |
일상속에서도 눈을 크게 뜨면 보이는 새로운 발견 (12) | 2025.06.06 |
농사짓는 로망을 조금 맛보는 중 (12) | 2025.06.05 |
비록 요리는 망했지만 (19) | 2025.06.04 |
인사를 건네면 응답해주는 시골 동물들 (13) | 2025.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