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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카나리아 라팔마섬

천연해수욕장에서 바나나 농장까지- 라팔마섬 천국과 지옥 여행기

by 요용 🌈 2024. 7. 29.

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9km의 등산을 끝낸 후 버스를 놓쳐서 콜택시를 타고 천연해수욕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은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본인은 베네수엘라 출신이라고 했다. 
 
"저희 가족들은 원래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았는데 저희 부모님은 젊으실적에 베네수엘라로 떠나셨어요. 그당시에는 베네수엘라로 일자리를 얻어서 많이들 떠났거든요. 그러다 저는 몇년 전에 부모님의 고향인 라팔마로 다시 돌아온거구요." 
 
"베네수엘라에서의 삶과 비교했을때 이곳이 더 만족스러우신가요?" 
 
호기심대왕 우리 버거씨의 질문이었다. 
 
"그럼요! 오래전에는 베네수엘라로 떠나는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에는 그 반대거든요. 아시다시피 그곳은 상황이 좋지 못해요. 이곳에는 친척들도 많이 있어서 외롭지 않고요. 라팔마에서의 삶은 정말로 평화롭고 좋아요. 스트레스가 없지요."
 
기사님은 잠시 후 손가락으로 언덕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했다.
 
"바로 저기가 저희집이에요! 제 아내와 아이와 살고있지요. 바닷가가 바로 내려다보여요."
 
 집이 워낙 많아서 정확히 어떤 집을 가리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ㅋ 일단 부러웠다.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운 바닷가를 내려다볼 수 있다니. 
 
잠시 후 우리는 천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는데 버거씨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파라다이스라며 연신 감탄을 했다. 테네리페에서 보았던 해수욕장과 흡사했다. 

파라다이스 맞네...

근데 거친 바위들을 보니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오잉?! 저기 레스토랑이 보이네! 일단 저기 들어가보자!! 
 
내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더니 버거씨가 어디를 가냐며 나를 따라들어왔다ㅋㅋ 
 
나 배고프다고... 
 

이때가 오후 5시 쯤이었는데 등산을 하고 온 직후라 지치기도 하고 당도 떨어지고 아무튼 나는 내 위장을 달래줄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카운터로 곧장 가서 주문을 먼저 했다. 메뉴를 대충 훑어본 후 참치 샐러드를 주문했다. 버거씨도 같은걸 먹겠다고 해서 두 개 시켰다. 그리고 그 옆에 바나나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길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에게 "저거 판매용인가요? 두개 살 수 있어요?" 라고 물었더니 영어를 잘 못하시는 이분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나나 두개를 툭 던져주셨다. "FREE" 라고 하시며. 
나는 그분께 환하게 웃으며 감사인사를 한 후 소중하게 바나나를 얼른 챙겨들었고 버거씨는 나더러 참 잘했다고 작은 목소리로 칭찬해 주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이 휘둥그레지는 우리 버거씨는 바나나 한입에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빨리 먹어봐! 이 지역 바나나는 뭔가 달라. 프랑스에서 먹던거랑 완전 다른 맛이라고. 우와..." 
 
솔직히 나는 원래 바나나를 좋아하는데 큰 차이는 못느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맛있게 먹었다. 
 

 
잠시 후 나온 참치 샐러드. 우와... 왜이리 맛있는겨...! 버거씨는 별 생각없이 나를 따라 주문했다가 너무 맛있다면서 두눈을 감고 '으음...' 신음까지 하고 난리가 났다. 나는 좀 전의 사장님께로 가서 샐러드가 맛있다고 쌍따봉을 날려드리고는 빵이 있냐고 물었다. 사장님 이번에도 빵 봉지를 툭 하고 던져주셨다. 이것도 공짜였다.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지 당시 식사를 하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다른 테이블들은 다들 음료 손님들.)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아서 맛나는 식사를 하며 앞에 펼쳐진 천연 해수욕장의 모습을 두눈에 꼭꼭 담았다. 우리는 수영은 하지 않기로 합의를 했다. 등산 후 너무 지친데다 샤워시설이 없어서 물놀이 후 바닷물을 씻어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에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감안해보았을때 이는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 우리는 다시 시내로 가기로 했다. 
영어를 못하시는 사장님은 방향을 물어보는 내 질문에 손짓을 동반해서 열정적으로 (스페인어로) 설명을 해 주셨고 나는 그 손짓을 열심히 따라했다. 버거씨는 그런 나를 보며 웃겨죽었다. (버거씨는 자기가 알아들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도 못 알아들었...) 
 

천연해수욕장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위로 올라왔다. 버스를 타고 산타크루즈로 가기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아 가는데... 
 
그러다 길을 잃어버렸다. ㅡㅡ;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 버거씨를 대신해서 내가 구글맵으로 버스 승강장을 찾아냈다. 
 
"음... 승강장은 걸어서 30분 거리라는데?" 
 
내 말에 버거씨는 걸어가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잘먹고 배가 부른상태여서 인내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세상 모든 시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무슈 롱 정브 (monsieur long jambes)...
롱다리아저씨가 자꾸만 저만치 앞서 걸어갔다. 막다른 길이 나올까봐 일부러 나보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서 미리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어딜 보아도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나나...
 
아참 택시기사님이 말해준게 생각난다. 
 
버거씨가 "여기저기 바나나농장 천지인데 어떻게 일하는 농부는 한사람도 보이지가 않지요?" 라고 물었더니 기사님은 사실 대부분은 방치된거라는 대답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셨다. 
 
"이 동네는 너도 나도 바나나 농사를 하니까 일을 해봤자 노동비도 안나와요." 
 
"그러면서 왜 다들 바나나 농사를 하는거지요?" 
 
"지원금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농장은 방치해 둔 채로 지원금만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거지요."
 
흠...?

걸어도 걸어도 바나나 농장만 계속 나왔다. 이곳은 바나나지옥인가... 
그래도 경치는 끝내주네. 

버거오빠 내가 휴대폰 렌즈 좀 닦고 찍으라니까... 

내가 바나나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바로 앞집 옥상에서 할머니 한분이 나에게 뭐라뭐라 소리를 치셨다. 살짝 무안해지려고 하던 찰라에 스페인어를 조금 하는 우리 버거씨가 그녀에게 고맙다고 대답을 한 후 나에게 의외의 내용을 통역 해 주었다.
 
"사진 찍고싶으면 안에 들어와서 찍어도 된대. 저 안에는 노란색 바나나도 있다네."
 
아... 스페인사람들의 말투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츤데레 할머니셨구나.
 
우리는 엄청나게 가파른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결국 버스 승강장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적이 있긴 했는데 버거씨가 너무 미안해해서 힘든 티를 낼 수가 없었...? 아니다, 편하게 힘든티를 냈던것 같다.

무사히 버스에 올라타고나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버거씨는 자꾸만 미안해했다. 
 
"미안해. 고생 진짜 많았지. 불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끝까지 웃어줘서 정말 고마워. 넌 정말 너무 멋진 사람이야." 
 
"당신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 둘이서 의논하면서 함께 여행하는건데 당연히 별별 상황이 다 있는거고 누구 한사람의 책임이 아니지. 근데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이따 버스내리면 나 좀 업고가라... 응? 할 수 있지?"
 
내 농담에 버거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과 농담을 잃지 않는 네가 너무 좋아."
 
"나는 먹을것만 충분히 있으면 화를 안내." 
 
 
덕분에 이날 하룻동안 나는 엄청나게 많이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나나 농장의 모습이 밤새 눈앞에 아른거렸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