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연애결혼

무조건 통하는 남편의 화해법

by 낭시댁 2020. 8. 21.

귀한 주말에 우리 부부는 살짝 다투었다. 

자서방이 오래전 도하로 떠난 친구가족에게서 연락이 와서 스카이프로 전화통화를 하느라 나와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자서방이 좋아하는 치킨 크림 파스타를 해 놓고 기다렸는데 자서방은 그들과 한시간 반동안이나 통화를 하며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고 나는 불어가는 파스타를 보다가 결국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 나중에 통화를 끊고 나온 자서방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저녁을 안먹겠다고 미리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또 나는 화가 나서 그런말을 언제 했냐며 정확히 말해줬어야지 하고는 됐다며 그대로 나 혼자 자러 들어가버렸다. 

사실 낮에 그 친구들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자서방이 전화를 걸었었고 그 친구들은 반갑게 인사만 한 후 식사 중이니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일찍 끊었다. 그리고는 우리 식사시간에 전화가 왔는데 자서방은 거절하지 않고 통화를 계속 한 것도 나는 좀 못마땅했다. 

방콕에 살때 자서방에게는 베프가 두명이 있었는데 셋이서 수년간 어울려 다니다가 그 둘은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나와 자서방이 결혼을 한 후에도 그들은 매달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 주었고 매번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올 정도로 자서방과는 각별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도하로 발령을 받아 떠난 이후에 우리를 도하로 초대 했었고 우리는 초대에 응했다가 결국 내 휴가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서로 소식이 뜸해졌고 그렇게 벌써 4년이나 되었다.  

혼자 잠자리에 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정말 오랫만에 반가운 친구들의 전화를 받아서 너무 들뜬것도 이해가 갔고, 또 그들은 나와도 친분이 있으니 나역시 옆에 가서 같이 인사도 나누기를 바랬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 다시 가서 대화를 나눠볼까? 아니야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강하게 뿌리치고 들어와서 자서방도 화가나 있을 것 같고 자존심도 상해...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간밤에 웃긴 꿈을 꿨다.

자서방이 나에게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주는 꿈을 꾸었다. 치킨뿐만 아니라 사과도 튀기더니 나에게 건네 주며 "이건 프렌치 스타일 애플파이야." 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서 나와보니 자서방이 거실에 없었다. 대신 거실에는 어제 내가 처리 하지 않고 뒀던 빨래들이 어느새 가지런히 개어져있었다.

부엌문이 닫혀있길래 슬며시 열어보니 안에서는 자서방이 앞치마를 두른채 프렌치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며 “자기야~" 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이다. 휴대폰에 내 이름을 한국어로 [자기야]라고 저장은 해 두었지만 읽을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연습을 한 것 같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프렌치토스트야! 가서 앉아있으면 내가 갖다줄게.”

방콕에 살때는 자서방이 아침에 팬케잌이나 오믈렛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자서방이 아침 식사를 안먹기 시작한 요즘에는 나 혼자 아침을 챙겨먹고 있다. 간만에 날 위해 아침요리를 하고 있는 자서방을 본 순간 속은 이미 버터녹듯 다 녹았다. 하지만 뚱한 표정은 미처 다 풀지 못한채 "맛있겠네..." 라고 말한 후 다시 돌아서려는데 자서방이 말했다.

"뭐 잊은거 없어? 이리와봐~" 

못이긴 척 다시 들어갔더니 꼬옥 끌어안아주며 모닝키스를 했다. 이미 뚱한 얼굴도 무장해제가 되었다.


"커피랑 먹을래?" 

"아니, 우유"

"꿀도?"

"응 꿀이랑" 

내가 구워서 냉동실에 넣어뒀던 빵으로 만들었다.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우유를 넣어서 속이 아주 촉촉하고 맛있었다.

 

 

 

 

 

 


본인이 마실 커피를 들고 내 옆에와서 앉은 자서방에게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꿈에서는 남편이 후라이드 치킨 만들어 주던데..."

"아 다음에는 후라이드 치킨 만들어 줄게. 안그래도 요즘에 튀김기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꿈에 또 남편이 사과도 튀기더니 그게 프렌치식 애플파이라고 우겼어."

"그런 음식은 없지만 와이프가 원한다면 그거는 지금 바로 해줄 수 있어." 

"아니, 안먹을래 ㅎㅎㅎ"

"어제는 미안했어. 와이프가 만든 요리는 오늘 내가 다 먹을거야. 완전 맛있겠더라." 

"그 친구들은 도하에서 잘 지낸대?" 

그제서야 자서방은 어제 도하 친구들의 소식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제 얼마나 말해주고 싶었을까...

친구는 어느새 고급 호텔 중역이 되어 두 지점이나 셋업을 했고, 당시 호텔 F&B 트레이너였던 와이프는 현재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기다 아기였던 아들은 이미 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해 주었다고..

"코비드 풀리는대로 놀러오라고 신신당부 하더라. 집도 넓어서 우리는 비행기표만 끊어서 오면 된대. 내년에 한 일주일 정도 다녀오자. 사막에서 1박도 할거라고 하길래 우리 와이프가 분명히 좋아할거라고 했어. 어때?"  

"응 이번에는 꼭 가자. 다음에 통화하면 나도 옆에서 같이 인사 할게. 그리고 저녁 안먹을거면 정확히 전달해 줘야 해. 괜히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놓고 계속 기다렸잖아."  

남편은 한번 더 알겠다며 사과를 했고 우리는 곧 도하 사막에서의 아름다운 1박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수보다 짧을지도 모르는데 다투면서 감정낭비 시간낭비 하지 말자고 꼭꼭 다짐했다. 그리고 후라이드 치킨은 좀 서둘러달라고 말했다. 난 먹는거에 최고로 약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