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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나는 프랑스에서 이렇게 추석을 보냈다.

by 낭시댁 2021. 9. 22.

지난 포스팅과 이어집니다- 빌려주는 대신에 사주시는 시어머니

초행길이었지만 남편이 태워다 준 덕에 수월하게 도착할 수가 있었던 한국인 언니네 집-

내가 2등으로 도착했는데 그 언니네 딸이 처음보는 나를 어찌나 반겨주던지ㅎ

프랑스어로 나에게 말을 걸며 (한국말로 '이모' 라고 불렀다) 내가 알려준 적도 없는 내 이름을 써준단다. ㅋㅋ 그리고는 빨간볼펜으로 내 이름을 꼬물꼬물... 야... 빨간볼펜으로 이름 쓰는거 아니야... 라고 할래다가 ㅋㅋ 꼬불꼬불 선을 그려놓으걸 보고 웃고 말았다 ㅋㅋ

맘씨 좋은 프랑스인 형부는 우리와 함께 만두도 빚고 곧 들이닥칠 대규모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함께 해 주었다.

하나둘씩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처음보는 사람들이었지만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또 추석이라는 마법의 울타리로 처음부터 쉽게 친해졌다. 일본인, 그리스인도 있었고 또 프랑스인 와이프와 한국인 남편 커플도 있었다. 대부분은 나처럼 한국인 와이프와 프랑스인 남편이었는데 프랑스에 거주한지 6년-20년까지 모두들 나보다 프랑스 대선배들이었다. ㅎ

어색하게 서있던 그리스인 여인에게 집게를 쥐어주며 전이 익으면 하나씩 뒤집으라는 임무(?)를 맡겼고 프랑스인 여인과 함께 계란물을 입혀가면서 수다도 떨며 어색한 분위기를 빠르게 날려버렸다.

전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니 명절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전을 하나씩 맛보다가 누군가가 사온 로제와인도 한잔씩 마셨다. 그래... 이게 명절이쥐!

잡채는 다른 사람들이 재료를 따로 준비해 두었던 것을 내가 간을 하고 버무렸다. 생각보다 맛있게 된것 같아서 혼자서 뿌듯스 ㅋ

완성된 전을 일본인이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고추전, 깻잎전, 버섯전, 표고전, 동태전, 두부전, 고구마전...

만두는 아이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 아이들은 만두가 쪄지는 시간 내내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아, 김밥도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뿌듯x2

이건 아뻬리티브로 그리스여인이 구워온 것들이야. 왼쪽꺼는 하얀색 치즈가 씹혀서 내가 두개나 먹었고 오른쪽 파이속에는 시금치가 들어있었는데 프랑스인 남편들이 더 좋아했다.

미리 배를 채워둔 아이들은 거실에 모여서 윷놀이를 하고 어른들을 위한 점심 식사 테이블은 다이닝 룸에 차려졌다. 모두 함께 힘을 보태니 요리도 뚝딱 상차림도 뚝딱

갈비찜, 잡채, 전, 김밥, 만두...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일 흥분한 음식들은 언니들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귀한 도토리묵, 건나물들(고사리, 토란, 곤드레 등) 그리고 쥐포!

아이들이 다 먹을까봐 따로 빼놨던 김밥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백세주를 비웠더니 더덕주가 등장했다. 내가 거의 다 마신것 같다. 이 귀한걸... 땄으면 마셔야지... 아무도 안마시길래 내가 ... 아까워서 마신거다 아까워서...

후식은 일본인이 만들어온 카스타드 푸딩과 파운드케잌.

아이고 귀요미...

아이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거실에 모여앉아 윷놀이도 하고 자기네끼리 잘 놀았다.

점심을 오래오래 먹고 마시고 앉아있다보니ㅋㅋㅋ 부엌에서 저녁식사라며 나물에 비빔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심 다들 배불러서 못먹는다고 했지만 막상 조금씩 덜어주니 또 들어간다ㅋ

기대했던 것 보다 너무너무 즐거웠다. 다들 한국을 떠난지 오래된 상태였지만 여전한 한국인들의 정을 느낄수가 있었고 나는 많이도 웃었다. (취해서...)

해외에 살면서 명절을 딱히 기념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언니들에게 참 고마웠다.

자서방은 내가 별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미안했던지 다음번에는 꼭 자기도 함께 하고싶다고 말했다. 다음번이면... 설날이 되려나...? ㅎ 다른건 몰라도 만두는 우리 남편이 제일 잘 빚을것같다.

모두 행복한 추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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