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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토론수업인지 연기수업인지

by 낭시댁 2022. 3. 7.

일주일에 한번꼴로 토론 수업을 하는데 오늘은 채식과 비건의 주제를 가지고 거의 롤플레이에 가까운 토론 수업을 했다.

설정은 어느 중학교에서 일주일에 3일간 비건, 유기농급식을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 학부형이 되어서 찬성과 반대파로 나뉘어 "격렬한" 토론을 해야하는 상황.

육식파인 나는 마음속으로 반대를 외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친히 찬성파와 반대파를 나누어주셨고 나는 '특별히' 교장을 시키셨다.ㅋㅋ 토론을 진행하는 주최가 되어 세부 상황은 알아서 하라고...

친구들이 다들 안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때 나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이러브파워."

반친구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앉아있을때 나는 선생님께서 시키시는대로 앞으로 나가서 '학부형들'을 향해 인사를 전했다.

"오늘 회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교장입니다. 지난 주에 이메일을 보내드렸는데 모두들 읽으셨지요?"

아무도 대답이 없음.

"요즘 학생들 비만이 늘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에 학교에서 유능한 비건 영양사를 고용했답니다.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비건식으로만 제공 할 예정입니다. 맛과 영양을 모두 잡는 식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만인 마담(반대파): "저는 집에서 건강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항상 요리하는데요. 학교에서는 그냥 기존처럼 육식을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집에서 고기를 좀 더 많이 드시는걸 추천합니다. 다른 질문 있으신가요?"

아이러브파워 (영화 독재자 말투)

터키 마담(반대파): "우리아이는 너무 말랐어요. 비건은 필요없어요."

"음... 찬성하시는 분들중에서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사실 할말이 없어서 찬성파 학부형쪽으로 마이크를 넘기는 중이었는데 눈치빠른 칠레 총각이 터키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당신 아들 친구라서 내가 봤는데 전혀 안말랐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빵터졌다. 모두들 점점더 상황에 몰입했다. 다만 애초에 찬성과 반대파 학부형들이 비건 주제를 놓고 서로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논지가 흐려져서 다들 교장인 나한테만 자꾸 따지고 있음.. 나 혼자 스탠딩코미디도 아니고 선생님은 멀찌기 앉아서 제일 즐기고 계신 표정.


학부형들의 원성이 점점 심해질때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이미 영양사와 계약서 사인해서 못바꿉니다. 돈을 많이 썼어요."

고급진 표현은 애초에 쓰질 못한다.

"그런걸 교장 맘대로 결정하나요? 상의도 없이?"

"지금 하고 있잖아요."

"독재자처럼 혼자 다 결정해 놓고 이게 통보지 상의인가요?"

"모두들 운 좋은줄 아세요. 이런건 내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독재자가 되었다. 푸틴소리까지 들었다 내가. 결국에는 경찰부르겠다는 소리까지 나왔지만 나는 열심히 짧은 프랑스어로 뻔뻔하게 연기를 해냈다. 하하 제법 잘한 것 같아서 블로그에 박제 중.

언어는 싸울때 가장 빨리 는다고하더니만 기센 학부형들에 맞서서 권력을 휘두르다보니 혀가 좀더 매끄러워진듯도 하다.

집에 갈때 버스 승강장에서 마주친 말레이시아 친구가 우아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교장선생님 내일 봐요."😆

오늘 수업이 제일 재미있었다!! 아이러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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