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내내 호텔 수영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는 플라야 데 라스 테레시타스 (Playa de las Teresitas)라고 하는 해변에 찾아갔다.
화산섬인 테네리페의 해변은 사실 온통 검은 모래뿐인데 이곳은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있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사하라등지에서 공수해온 흰 모래를 깔아놓은거라고 한다.
구름이 잔뜩 낀데다 바람도 세차게 불고 있어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해변에 있는 작은 바로 가는 도중 모래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위태롭게 홀로 걷고 계신 아버님께 달려가서 아버님의 오른팔을 꽉 붙잡았다. 아버님도 순간 당황하신 듯 했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한 행동이라 나도 속으로는 좀 당황했다. 아버님은 괜찮으니 걱정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래도 걱정돼서 기왕 붙잡은 팔 끝까지 꿋꿋하게 붙들고 걸었고, 앞서 걸어가시던 어머님께서는 웃으시며 아버님을 향해 그집 며느리가 참 착하다며 칭찬하셨다.
성격 급하신 우리 어머님, 어느새 교자 한접시와 시원한 맥주를 갖다주셨다.
바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다는 색다른 운치가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감상하다가 시부모님께서는 나더러 가고싶은 곳이 있는지 물으셨다.
"음... 가고싶은곳은 가라치코 딱 한군데뿐이었는데...
어머님이 챙겨오신 테네리프 관광책자를 넘겨보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
"혹시 전망대같은곳 없을까요?"
내 말에 아버님은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셨는데 오잉?! 딱 전망대스러운곳이 산위에 보이는 것이었다. 😆😆
"멀지는 않을까요?"
"안멀어."
짧게 대답하신 후 이미 차로 향하시는 시아버지.
그렇게 우리는 산위에 보이는 그 장소를 향해 구불구불한 절벽도로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쪽은 말그대로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또 한쪽은 낭떠러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도 안보이기때문에 올라가는 내내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우리 아버님은 한손으로 능숙하게 렌트카를 몰고 가셨다. (아이고 제가 죄인입니다... 전망대따위는 안봐도 되는데요...😭)
뒤로 멀어지는 해변과 마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와...
하늘에 구름마저 장관이었다. 이탈리아 포지타노가 떠오르는...
우리가 전망대라고 믿은 그 장소에 마침내 도착을 했건만 주차할 자리도 없고 전망대로 보이는 그 장소는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ㅠ.ㅠ 그래도 아버님은 실망이나 당황하시는 말씀도 일체 안하시고 적당한 장소에 능숙하게 주차하셨다.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을 보니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충분히 느껴졌다.
난 역시 사진을 잘 찍는다! 움하하! 어머님께서 흡족해 하신 사진 12번.
우리가 방금 지나왔던 바로 그 해변이다. 생각보다 엄청 길구나...
그리고 우리가 올라온 해안도로와 뒤로 펼쳐진 검은산.. 구름... 바람도 엄청 시원상쾌하고!
절벽 곳곳에 보이는 선인장과 알로에들은 더더욱 이 장소를 이국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저 아래에는 검은 모래해변이 보였다.
"미슈, 우리는 이제 어떻게 돌아가나요?"
어머님의 질문에 아버님께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유턴하기에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갑자기 나타나기때문에 너무 위험천만했던 것.
결국 우리는 유턴할 장소를 못찾아서 계속 직진했고 마침내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바로 그 검은 모래 해변까지 내려왔다.
그 해변에서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은 누드인데요??
"저기보세요! 저기 저 남자 누드예요!"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쳐버렸는데 우리 어머님의 대답.
"잘 생겼어?"
"얼굴은 못봤어요... 딴데만 보이더라고요."
"나도 보고싶은데!"
"한명이 아니라 여럿이에요. 여자도 있고.."
어머님께서는 한술 더 뜨셔서 프랑스에 있는 누드 비치에 갔던 경험도 들려주셨다. 나는 또 옴마옴마 하면서 열심히 경청ㅋㅋ (어머님께서는 오히려 한국 해변에는 누드 혹은 반누드로 태닝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셨다.)
우리가 차안에서 이런 잡담을 큰소리로 나누고 있을때도 아버님은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하셨다.
오늘도 여러모로 좋은 구경(?)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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