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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시부모님과 다녀온 테네리페 여행

생수도 안주는 5성급 호텔. 그래도 우리는 웃었다.

by 낭시댁 2022. 6. 22.

우리가 7박 8일간 묵었던 산타크루즈 이베로스타 호텔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어머니 말씀으론 가격도 5성급치고는 저렴하다는데 나는 일단 조식이 너무 맛있어서 좋았고, 호텔의 정원과 그 뒤에 펼쳐진 산의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 머무는 내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생수였다.

바로 이런 재활용 유리병에 생수를 채워서 첫날 두병이 제공되었는데, 다음날 룸메이드가 청소를 하면서 빈병만 수거하고 새 물은 주지 않은것이다. 나는 그저 잊어버렸나 보다 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날 조식을 먹으면서 시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이 호텔은 첫날에만 무료로 물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나도 메이드가 깜빡한줄 알고 리셉션에 전화를 해서 말했지. 그랬더니 직원이 말을 빙빙 돌리면서 미니바에 있는 물을 마시면 되지 않냐는거야. 그거 무료냐 물으니 아니래. 무료로 물은 안주냐 다시 물으니 복도에 정수기가 있다는구나. 다행히 어제 마시다 남은 작은 플라스틱병이 있어서 미슈가 복도에 나가서 정수기 물을 받아왔지."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그래도 5성급 호텔인데...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생수는 무료로 주던데? 만일 우리가 7박 8일을 연속으로 예약하지 않고 1박씩 지불했다면 같은 가격으로 매일 물을 줄거 아닌가?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께서 5성급 호텔에 묵으시면서 물 심부름까지 하셔야 되는건가?!

"나는 이따위 구두쇠호텔에서 내 돈주고 물은 사먹지 않을거야. 이따 외출하면 마트에 들러서 생수를 잔뜩 사오자꾸나."

"저 마카롱 아껴먹을라고 했는데 가져가버렸으니 그거 도로 내놓으라고 해버릴까요?"

“그래! 우리도 째째하게 상대해주자!”

우리는 정말 이 째째하고 멍청한 호텔에 분개했다. 고작 생수갖고 평판을 잃어버리겠다고?

"제 방에 사실 에어컨이 안되거든요. 처음부터 안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구두쇠호텔이라면 일부러 전기세를 아끼려고 방치한걸지도 모르겠어요! 당장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해야겠네요."

"암! 이 호텔은 하당(radin: 구수쇠)이고 꽁(con:멍청이)이야!"

이렇게 나는 시어머니께 새로운 프랑스어 단어 두개, 하당을 배웠다. (입에 착착 달라붙길래 자서방한테 써먹었더니 꽁(con)은 정말 나쁜말이니까 쓰지말란다. 하지만 벌써 입에 붙어버렸다. 꽁꽁꽁!)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리셉션으로 전화를 했다. 친절한 젊은 남자가 응답했는데 에어컨 수리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근데 무료생수는 더이상 제공되지 않는건가요?" 라고 물었더니 그 직원은 "아, 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시부모님이 계시는 391호에도 부탁합니다."

"네, 물론이죠!"

잘 해결된줄 알았지만 내가 몇분 후 리셉션에 다시 전화했으때 응답한 중년남자직원은 쌀쌀함의 극치였다.

"제가 지금 외출할건데요, 외출한 사이에 에어컨 수리 진행해주세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물도 잊지말아주세요."

"물은 미니바에 있으니 그걸 드세요. 따로 드리지 않아요."

"방금 통화한 직원은 준다고 하던데요?"

"물은 첫날에만 제공됩니다. 대신에 복도에 정수기가 있습니다."

"물병을 가져가셨잖아요. 저는 방금 통화한 직원에게 물은 더이상 제공되지 않는지 문의했을뿐이고 그분이 보내주겠다고 한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무얼 원하시나요?"

으악!! 너무 화가 치밀었다. 더이상 대화가 안되는구나싶어서 그저 "Never mind"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우리는 사실 이 거만하고 불친절한 직원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에 항상 까를로스 곤이라고 부르셨다. 전 르노,닛산회장인데 검색해보니 진짜 닮았다ㅋㅋㅋ

그렇게 우리는 그날 저녁에 마트에 들러서 생수를 사서 돌아왔다.

그러다 며칠 후 우리가 수영장에 있을때였다. 옆에 있는 바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나와서 수영장에 있는 모든 투숙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것이 아닌가.


무료아이스크림 덕분에 나를 비롯해 풀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다. 다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잠시동안 은근한 유대감마저 느껴졌다.

"...완전 하당은 아닌가봐요..."

"그러게.. 뭐 싸구려아이스크림이지만... 기분좋네..."

시어머니는 사실 까를로스 곤을 닮은 그 한 사람만 빼면 여전히 이 호텔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산타크루즈 데 테네리페 이베로스타 그랜드 호텔 멘세이...

비추입니다... 리셉션에 가시면 까를로스 곤을 닮은 그 사람은 피하십시오... 조식은 맛있지만 생수는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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