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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시부모님과 다녀온 테네리페 여행

여행 중 먹다 남은 피자가 가져다 준 기쁨

by 낭시댁 2022. 6. 18.

시부모님께서 잔뜩 구입하신 염소치즈는 호텔 냉장고 두곳에 나누어 넣어놨다. 그리고 잠깐 방에서 쉬다가 우리는 저녁 8시쯤에 택시를 타고서 스페인광장 (Plaza de Espana)으로 다시 돌아갔다. 미리 봐두었던 줄이 길-었던 그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혼자 유럽국가 여행시 이런사람 조심하세요. (feat. 난민)

다행히 긴 줄은 없었고 우리가 앉을 테이블도 있었지만, 바로 뒤에 설치된 야외콘서트 무대에서 공연히 한창 진행중이라 엄청 시끄러웠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위해 시부모님께서는 소음따위는 게의치않으시는 듯했다. 뭐 저도 신나고 좋습니다!

안내 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아버지께서 자신있게 음료를 준비하셨다.

"까바 한병!"

까바가 뭔가 했더니...

"까바가 샴페인이었군요!"

"그래. 하지만 엄밀히 이건 그냥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해야한단다. 샹빠뉴에서 제조된 게 아니니까."

시원한 까바 첫잔을 기분좋게 부딪혔다. 친친!

시아버지께서 들뜨신 표정으로 까바를 가장 먼저 외치신 것처럼 시어머니께서도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먼저 외치신 음식이 있었다. 바로 이 감자요리, 파파스 아루가다스 (papas arrugadas)

"이건 꼭 먹어봐야 해. 바닷물에 삶아서 요리하는 감자란다. 껍질에 하얗게 묻은건 소금이야. 그리고 이 예쁜 색깔의 모호에 찍어먹는거야. 모호는 그냥 소스라는 뜻이지."

우리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어머님께서는 다음날 모호 레시피 책까지 사셨고 다른 레스토랑보다 이곳의 소스가 더 맛있어서 며칠 후 한번 더 이 레스토랑을 찾기도 했다.

"요즘에는 바닷물대신 소금물에 삶겠지요?"

"그렇겠지. 그래도 바닷물에 삶으면 더 맛있을것 같아."

"왜요?"

"물고기들의 배설물이 섞여있으니까! 호호"

😐😐😐


감자도 헤치우고 따끈따끈한 식전빵도 버터와 남은 모호에 찍어먹으면서 까바를 마셨더니 벌써 배가 불러버렸다. 메인 메뉴도 아직 안나왔는데 말이다.

"저 어쩌죠... 벌써 배불러요. 아무래도 주문한 피자는 못 먹을것 같은데요..."

"걱정마, 피자는 작은 사이즈니까."

아버님께서는 새우와 오징어 요리를 주문하셨는데 사이즈가 딱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내가 각자 주문한 피자는... 라지...

엄니... 피자 작은거라면서요... ㅠ.ㅠ

배는 부르지만 일단 시어머니와 피자 한조각씩 바꿔먹는건 잊지 않았다.

사진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우리가 앉은자리 바로 뒷편에서 진행되고있는 콘서트는 아주 큰 행사였다. 방송국 촬영도 하고, 우리 테이블 바로 옆이 무대의 뒷편이라 스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것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은 음악에 따라 다같이 노래를 따라부르고 손뼉을 치는 등 흥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시끄럽기는 커녕 흥에 겨운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며 우리도 같이 웃었다.

식사를 먼저 끝내신 시아버지의 접시위로 우리는 억지로 피자 한조각씩을 얹어드렸다. 안드시겠다던 아버님도 결국에는 드셨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반밖에 못먹었네... 어머님의 피자도 반이나 남았다. 아까워라... 둘이 합치면 온전한 하나의 피자가 남은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직원을 불러서 포장해 갈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흔쾌히 상자에 담아서 갖다주었다!

"너 그거 언제 먹으려고?"

"내일 저녁에요. 내일은 두분이서 저녁드세요."

"너 방에서 혼자 그 식은 피자를 먹겠다고? 그랬다간 내가 너 방에서 못나오게 가둬버릴거야."

"저 방에서 안먹고 테라스에서 먹을게요."

"안돼안돼. 맛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미슈, 얘 좀 말려줘요."


아버님도 그건 안된다고 나에게 고개를 저으셨다.

두분이 말리시건 말건, 나는 식사를 마친후 커다란 피자상자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나왔다.

"저는 이 멀쩡한 피자가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걸 용납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머리 바로 위에서 천둥소리를 내며 펑펑터지는 불꽃들! 폭죽의 잔해들이 발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 셋은 불꽃놀이가 끝날때까지 고개를 치켜들고 구경했다. 주변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과함께 우와! 와! 함성도 맘껏 지르면서.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불꽃놀이가 끝나자마자 야외공연장에 있던 수많은 관객들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께서 인파들에 부딪히실까봐 겁이 나서 앞서 걸어가시던 어머님을 불러 비장하게 말씀드렸다.

"제가 앞장설테니 어머님은 아버님과 함께 제 뒤를 따라오세요. 피자상자가 커서 사람들이 피할거예요."

나는 피자 상자를 앞세우고 천천히 걸었고 다행히도 사람들은 알아서 우리를 피해주었다.


"피자 포장해오길 정말 잘했지요?😆"


무사히 인파들을 헤치고 나왔을때 시부모님께서는 웃으시며 피자상자의 활약을 인정해주셨다. 그래도 여전히 내일 저녁에 나혼자 피자를 먹는건 안된다고 하셨다.

"낮에 봤던 난민소년을 다시 만난다면 주고싶네요."

아버님께서는 내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셨지만 어머님은 단호하게 도리도리하셨다.

"걔는 안돼."


바로 그때!

아버님께서 "저 사람은 어떠니?" 라고 하시는 말씀에 고개를 돌려보니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어머님께서는 바로 내 피자상자를 들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스페인어로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돈은 아니고 혹시 피자도 괜찮나요? 아직 따뜻해요."

그 맹인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더니 바로 두손을 내밀어 소중하게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즉시 상자를 열어서 피자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람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더니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깝냐?"

😆😆😆😆 이보다 재미있는 시어머니 또 계실까요?ㅋㅋㅋ

"저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저 피자는 훌륭하게 인파를 뚫고 나오는데 활약을 해 주었고 그 직후에는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갔어요!"

나는 진심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낮에는 난민소년때문에 기분이 좀 언짢았었는데 하루의 마무리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날아갈 것 같았다.

호텔을 향해 시원한 밤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여전히 감동의 여운을 느끼며 혼자서 계속 떠들었다.

"혹시 모르죠. 저 남자가 배가 너무 고프다고 신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바로 그때 우리가 피자를 들고 짠 나타난걸지도요!" 내 말에 우리 시어머니의 대답,

"그럼 내가 신이구나!"

아예... 😐

밤에 잠이 들때까지도 이 충만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이날 저녁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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