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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카자흐스탄 소녀가 건네준 수제 치즈볼

by 낭시댁 2022. 10. 13.

목요일에는 점심시간이 길어서(3시간!) 카자흐스탄 친구와 함께 시내에 있는 학교 구내식당으로 학식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기차+버스 파업(... 파업의 나라!)으로 인해 구내식당도 문을 닫았다는 안내가 붙어져 있었고 우리는 하는수 없이 근처에, 일전에 눈여겨봤던, 이탈리아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3.30유로보다는 훨씬 비싼 지출이 들기는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10유로짜리 점심 메뉴를 주문했는데, 파스타+ 디저트+ 커피가 포함된 구성이었고, 모두 맛있었다.

나는 디카페인 커피로 주문했고 친구는 커피 알롱제, 즉 연한 커피로 주문했다.


우리는 아늑한 레스토랑에서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나 스타니슬라스 광장에서 카자흐스탄에서 가르쳤던 제자를 잠깐 보기로 했는데 같이 만나러가자."

그녀가 카자흐스탄에 있는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낭시에 대학원 공부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이틀전에 낭시에 도착한 상태라고 하니 아직 많이 낯설텐데 고국의 스승을 만나면 정말 반갑겠구나 싶었다.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우리는 소화도 시킬겸 느긋하게 걸으며 가을 풍경을 감상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었지만, 또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나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있다.


스타니슬라스에서 열리는 Jardin 행사를 구경하며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흥미로웠다.

잠시후 그녀의 제자를 만났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인들과 외모가 매우 흡사한데, 눈색깔만 이국적으로 다른것 같다.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동글동글 애띤 얼굴에 안경을 낀 여학생은 교수님을 위해 고국에서 한봉지 챙겨온 먹거리들을 선물로 건넸다.

이건 학생의 어머니께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내신 수제 치즈라고 한다.

하나 주길래 겁없이 받아서 맛을 봤는데 엄청 짜다.

"이건 카자흐스탄 유목민들이 우유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전통 치즈야. 요거트 처럼 만든다음에 손으로 뭉쳐서 햇빛에 말린거지."

"요즘에도 카자흐스탄에는 유목민이 있어?"

"응,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있어."

치즈는 매우 단단했는데, 조금씩 잘라 먹다보니 유목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 형태의 음식이었을지가 가늠되었다. 이 작은 치즈 한알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우유가 농축되어 있었고 한알에 배가 금방 불러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를 않는 치즈볼....;; 그래도 여학생의 어머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보내셨을지를 생각하며 소중하게 먹었다. (어린딸을 머나먼 타지로 보내는 와중에, 그곳에 교수님이 계시다고 하니 크게 안심이 되셨을것이다.)

친구 역시 고국에서 온 어린 제자가 반가웠는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고국어로 쉴새없이 안부를 묻는 모습이었다.


"근데 여기는 물가가 너무 비싸요. 오늘 아침에 슈퍼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놀랬어요..."

아직 프랑스어가 서툰 제자의 말을 친구가 통역해 주었다.

"레스토랑은 비싸지만 한국에 비하면 식재료는 싸더라구요. 과일, 야채, 고기, 우유, 버터, 치즈, 빵 등등... 한국은 더 비싸거든요."

내 말에 귀여운 얼굴을 한 여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은 여기보다 비싸요? 카자흐스탄은 여기보다 엄청엄청 더 저렴하거든요..."

걱정이 한가득인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말해줬다.

"아, 로렌대학교라고 했지요? bourse 꼭 신청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을수 있는 제도예요. 얼마전 브라질 학생도 환율때문에 힘들다면서 신청했는데 지금 신청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서 대기가 길대요. 그러니까 오늘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신청해봐요. 그게 있으면 학식도 1유로로 먹을수가 있어요."

내 말을 귀담아 들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여학생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셋이서 천천히 학교를 향해 걸어갔는데, 학교에 도착했을때쯤이 돼서야 내 손에 들려있던 치즈볼이 모두 뱃속으로 옮겨갔다. 친구는 식구들 갖다주라고 치즈 몇개를 더 챙겨주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자서방은 치즈를 안먹는데다 이 치즈는 오히려 친구에게 더 귀하고 값진 음식일테니까.

나는 두사람이 좀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먼저 강의실로 들어가며 여학생과도 작별을 했다.

부디 낭시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칠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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