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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프랑스에서 존엄사를 보는 시선

by 낭시댁 2022. 11. 7.

이번주 수업의 주제는 생명윤리인데 선생님께서는 월요일 첫수업부터 가장 무거운 주제 가지고 오셨다.

L'Euthanasie 와 Suicide assisté. 사전으로 번역하니 안락사와 조력자살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나왔다.

Euthanasie 안락사 :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함
Suicide assisté 조력자살: 의사는 필요한 약물만 준비해 주고 당사자가 스스로 주입함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수 없는 주제인데 우리 엄마는 유독 죽음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하신다. 우리반에서도 우즈베키스탄 여인이 유독 이 주제에 대해 반감을 표현했는데, 선생님께서는 흥미로운 주제이니 잠시 종교를 떠나서 마음을 열어보자고 제안하셨다.


우선 영상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라 꽤 많이 놀랐다.

영상은 2019년에 촬영되었다. Jacqueline Jenquel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74세의 나이로 특별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여성이다. 그녀는 혼자 나이들고 비참한 끝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 건강할때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 세상과 작별하기로 했다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듬해 1월에 스위스로 가서 가족들에 둘러쌓여서 웃으며 떠날거라고 했다. 자식들도 동의했다고 한다. 원래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고 떠나고 싶었는데, 스위스에 있는 의사가 휴가를 떠난다고 해서 의사 일정에 맞춰서 1월로 정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오래 있고 싶지 않은것이다 ㅡㅡ; 자식들도 있는데!!!

하지만 그녀는 코로나때문에 계획했던 대로 떠나질 못했다.

저 젊은 남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처럼 젊은 남자랑 사귈수 있다면 안떠날거야. 내 또래의 배나온 남자들이랑은 도저히 못만나겠어." 그 한마디에 남자는 깔깔 웃는데 그녀는 매우 진지한 표정ㅎㅎㅎ

또한 그녀는 가장 좋은 것은 내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식사를 하고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내 집에서 떠나고 싶은데 프랑스에서는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스위스까지 가는 고생을 해야만 한다고 불평한다.

코로나때문에 몇번 스위스행을 미루던 그녀는 결국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자살한채로 발견된다.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자살방조죄로 경찰에 연행될테니까 그녀는 결국 혼자서 떠났다.

프랑스에서는 국민들 대부분이 조력자살에 찬성한다고 한다. 이렇듯 스스로가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수 있기를 원한다고 답한 비율은 18-24세에서 83%였고 65세 이상의 국민들은 무려 93%나 된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찬성하는지 의견을 물으셨다.

사실 무슬림친구들을 제외하면 우리반에서는 나 혼자 반대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불치병을 앓으며 고통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더이상의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것을 존엄사라고 부르는것 같다.)


불치명의 경우라면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앞서 영상에서 봤듯이 건강한 여성이 자식 손주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음에도 작별을 고하는 모습이 과연 어린 손주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 놀랍게도 반친구들 대부분은 할머니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만 기억하게 될테니 당연히 좋은 영향을 줄거라고 했다! 자칫 손주들도 앞으로 살아가며 의지가 약해질때마다 스스로의 생명을 경시하게 되지는 않으려나...?

우리는 결국 이 주제로 수업중에 꽤 길게 토론을 했다. 사실 무슬림 두친구들은 종교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해서 사실상 나 혼자 5명을 상대로 토론을 이어갔다.

"카자흐스탄에 살때 불치병을 앓던 이웃 할아버지 한분이 스위스에 가셔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떠나셨어. 가족들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

"나역시 불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는 도움이 될거라고 나 역시 동의해. 하지만 이건 장차 남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 예를 들어 정신질환이 있거나 약물치료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그럴때는 환자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인지 담당의사가 결정해야지."

"그 역시 남에 의해 내 죽음이 결정되는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아니지. 결정은 환자 스스로가 내리는거라니까."

"의사도 사람인데 환자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말하는걸 100% 신뢰할 수 있을까? 환자 역시 당시 감정에 휩쓸려서 섣불리 결심하는 걸 수도 있지않을까?"

"환자 스스로의 결정은 존중해줘야지. 본인의 생명이니까."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 역시 죽음을 선택하도록 주변에서 은근히 영향을 끼칠수도 있을것 같아. 애초에 나에게 이런 선택권이 없었다면 희망과 의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갈 생각만 했을 사람들 역시 힘들때마다 의지가 약해지고 안락사를 쉽게 떠올리겠지."

내 말에 선생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공감하셨다. 그리고 혼자서 여러명을 상대로 토론을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앞서 선생님께서는 찬성인지 반대인지 말씀을 안해주셨었는데 우리 토론이 끝날 무렵 나처럼 반대 입장이라고 밝히셨다. 프랑스도 점차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어서 노인들의 간병비용이 사회적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나 조력자살이 합법화가 되면 그 노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압력도 더 커질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문화적 차이를 절실히 느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우리반 친구들 모두 생각하는게 이렇게나 다를 줄이야...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아침 등교길 비에젖은 도로위에서 발견된 날다람쥐. 더이상 날기를 포기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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