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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우리반 반장이 되었다.

by 낭시댁 2022. 11. 4.

며칠 전 학교에서 반대표를 뽑는 투표를 했다. 그룹별로 두명씩 대표(délégué)를 뽑아서 학교측에다 각종 피드백을 전달할 거라고 했다. 

 

지원자가 없는지 선생님께서 여러차례 물으셨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은근히 부추기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수업끝나면 저는 항상 배가 고파서 안돼요... 거기서 혹시 음료수나 간식을 주지는 않겠지요?" 

 

"티파티를 가는게 아니예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웃었다. 내가 맨날 먹는 얘기만 한다는 사실은 우리반 사람들 모두 익숙하다. 

 

결국 투표가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 종이를 나눠주셔서 거기다 두명씩 이름을 써냈는데 나랑 콜롬비아 남학생이랑 두 사람이 선출되었다.

 

"오늘 내가 가져온 쿠키가 다들 맛있었나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때문에 나를 뽑아준게 맞다고들 했다. 

 

반대표가 된 나는 인심쓰는척 쿠키상자를 책상위로 다시 올려놓고 친구들이 맘껏 먹도록 했다.

 

 

 

"자, 그럼 오늘 남은 시간동안에는 여러분들끼리 학교측에 전하고 싶은 말들을 회의를 통해서 추려보도록 하세요. 저는 잠시 나가있을게요."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내 쿠키 하나를 집어들고 나가셨고 우리는 의외로 열띤 회의를 했다. 불만 사항이 꽤 많았나보다. 

 

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정리하고나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도 함께 정리했다. 


1. 수업에 늦는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수업이 지체되는 경향이 있다. 제시간에 온 학생이 한두명뿐일지라도 제시간에 수업을 시작하기를 원한다. 

2. 외국인으로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주제나 표현을 먼저 공부하기를 원한다. (시를 창작하거나 혹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표현들을 배우는건 좀 더 나중에...) 

3. 컴퓨터학습실에서 수업하는 2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그날 달성해야할 미션을 준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것보다 나은게 없지 않은가. 

 


이 정도로 내용이 추려졌다. 

 

 

그리고 이틀후에 반대표 회의가 열렸다.  

 

수업이 오후 4시에 끝났고 회의는 4시반에 있었는데, 나는 간식거리를 챙겨갔다. 

 

사과랑 크림파스타+비트는 점심도시락, 바나나랑 과자는 오후 간식

 

나는 콜롬비아 남학생이랑 둘이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내가 가져온 바나나(나눠먹으려고 두개 가져간거)랑 시어머니께서 디종에서 사다주신 살구 생강빵(?)을 나눠 먹었다. 그걸 먹으면서 우리는 귀신얘기했다. (이 19세 소년은 귀신얘기를 좋아한다. 30분간 이야기가 급박하게 흘러감. 여러분, 콜롬비아 귀신도 무섭습니다...) 

 

 

다른 그룹들도 다같이 모이는 회의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는 그룹별로 따로 진행되었다. 회의실에는 선생님 한분이 앉아계셨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부분들을 먼저 말하고 나서 정리해 간 내용들을 모두 전달했다. 

 

"혹시 그 외에 또다른 건의사항은 없나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머릿속에 챡 떠오르는 마지막 건의사항을 망설임없이 말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시니...

 

"다음번 회의때는 다른반 대표들도 다같이 모여서 다과회처럼 회의를 진행하는건 어떨까요? 음료수도 있고 간식도 있고... 그런 가벼운 분위기에서 좀더 편안한 대화들이 오갈것 같아요." 

 

내 말에 콜롬비아 소년은 한손으로 이마를 짚고 두눈은 질끈감은 채 입만 웃고있었다.

 

"너 내가 챙피하니?" 

 

내 말에 소년은 대꾸도 없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챙피하구나. 

 

"좋은 생각이예요. 다음 회의때 좀더 가벼운 분위기로 다과와 함께 회의를 해 보자고 건의해 볼게요." 

 

선생님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소년은 어느새 나와함께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 내 덕이다."

 

소년은 나를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같이 웃으셨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회의가 끝났다. 다과회라는 성공적인 결실(사리사욕)을 끌어낸 채로 말이다.  

 

반대표 별거 아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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