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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프랑스 시골 샤또를 구입하고 백작부인이 된 내 친구.

by 낭시댁 2023. 9. 6.

 
이전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프랑스에서는 친구들의 남편들도 친구가 된다.

 
 
메인 식사가 끝난 후 알마부부는 치즈와 바게트 그리고 레드와인을 내 왔다.

내가 시댁에서 직접 따온 무화과를 한통 가져왔는데 무화과를 좋아하는 알마가 엄청 고마워했다. 치즈와 함께 몇개를 잘라서 맛보았는데 다들 맛있다고 난리났다.  
 
종류별로 치즈를 조금씩 맛보고 있는 나에게 스테판이 물었다. 
 
"한국에서도 치즈를 많이 먹나요?" 
 
"음... 한국에 살때 저에게 치즈란 체다와 모짜렐라였어요."
 
내 말에 에리카가 자기도 필리핀에선 그렇게 생각했다며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스위스에 출장을 가게되었는데, 호텔 조식에서 엄청난 종류의 치즈들이 있는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티비에서나 보던것들인데 신나게 하나씩 겁없이 접시에 담았어요." 
 
"울랄라ㅋㅋㅋ" (다들 빵터짐)
 
"용감하게 한입먹고나서 결국 나머지는 손도 못댔지요ㅋㅋㅋ"
 
"나 완전 공감가. 내가 그래서 치즈를 안먹어. 체다랑 모짜렐라 아, 그리고 라끌렛만 빼고!"
 
"나는 반대야. 프랑스에 와서부턴 조금씩 골고루 치즈를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어. 바게트와 레드와인이 곁들여지면 또 맛이 다르더라구." 
 
내 말에 이번에는 알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여름 휴가를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이크와 에리카는 기차를 11시간동안 타고 프랑스 남부에 가서 니스 칸등 5개 도시를 일주일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다고 했다. 역시 아시아스타일ㅋ 
 
알마와 스테판은 라스코동굴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너무나 흥미로웠다. 구석기시대의 벽화들이 있는 동굴인데 벽화가 훼손돼서 폐쇄했다가 요즘에는 가이드를 동반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거긴 어떻게 갈수있어? 나 정말 가보고 싶다. 우리는 이번에 아파트사면서 지출이 커서 한동안 휴가는 꿈도 못꿀 형편이지만..." 
 
내 말에 알마가 말했다. 
 
"그러지말고 우리 별장에 놀러와서 지내다가 라스코동굴도 같이 보러가자! 거기 엄청 멀어서 그냥 그것만 보러가기는 힘들어." 
 
"뭐어? 별장이 있다고??" 
 
"아 그냥 작고 오래된 샤또야." 
 
"뭐어? 샤또???!!" 
 
우리가 깜짝 놀래자 스테판이 노트북을 가져와서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왜 자꾸 알마를 꽁테스 (comtesse: 백작부인) 이라고 부르는지 말이다. 
 

 

 
"아르작이라고 하는 곳에 있어요. 고작 7가구가 거주하는 마을이지요. 무려 700년전에 지어진 샤또인데 2009년에 헐값에 사들였어요. 프랑스 동남쪽에 있으니 낭시와는 정 반대 방향에 있는거죠. 운전해서 11-13시간 정도 걸리는데 매년 여름마다 가서 조금씩 공사를 하고있어요.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공사해서 이제 조금 지낼만 한 정도가 되었어요."
 
"샤또가격 보다 공사비가 더 많이 들었겠는데요?" 
 
"부알라! 은행에서 이제 대출 안해주려고 해요 하하." 
 
"벽돌값 엄청 들었겠는데요?" 
 
"노노! 벽돌을 사용하는건 범죄!! 이건 700년된 건물이라 재료도 아무거나 못써요. 첫날에는 시장이 직접 찾아와서 인사를 하더라구요. 잘 부탁한다면서요. 700년된 재료를 고대로 사용할순 없겠지만 그래도 모양과 색깔을 최대한 맞춰서 보수해야 하는거라 전문업자들과 작업해야 해요. 그래서 더디고 비싸지요. 그래도 후회는 없답니다." 
 

스테판은 공사가 끝난 벽돌벽들을 뿌듯한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이곳은 오래전 이 지역 영주가 살던 성이었어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위해 성벽이 높고 가장 높은 지대에 우뚝 솟아 있지요. 알마는 창가서 서서 동네사람들이 지나갈때마다 손을 흔들고 있어요. 백작부인이 다 된거지요." 
 
"응 스테판은 나더러 맨날 꽁테스라고 불러 ㅋㅋㅋ"
 
comtesse는 백작 혹은 영주를 뜻하는 comte의 여성형이다. 여자백작 혹은 백작부인이라는 의미. 
 
나와 에리카는 우아하게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알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흉내내고는 까르르 웃었다. 
 
"정말로 나 거기가면 맨날 창가에 서서 사람들한테 손흔드는게 일상이야. 그 마을에 일곱가구밖에 없으니 다들 엄청 가깝게 지내거든. 문제는 내가 시력이 안좋아서, 누군지 모르니까 일단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있어. 시골 사람들이라 차 색깔도 죄다 검은색이라 누가 누군지도 몰라. 내가 손을 흔들고 있으면 스테판이 묻는다? 누구냐고? 그럼 나는 항상 모른다고 대답하고는 둘이 웃어ㅎㅎㅎ" 
 
"나도 독일인 출신이고, 알마는 그들 입장에서 봤을때 수상한 외모의 카자흐스탄인이라 ㅋㅋㅋ 초반에는 경계가 심했어요. 지금은 다들 엄청 친해져서 여름에 갈때마다 저녁에 다같이 모여서 바베큐파티도 하고 각자 집에서 담은술도 가져와서 나눠마시고 그래요. 평화와 힐링 그 자체예요. 돈은 많이 들고 몸은 힘들지만 후회는 한점도 없어요." 
 
알마와 스테판은 갑자기 그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일곱집밖에 없는 작은 마을의 구성원이 된듯했다. 
 

"난방기구도 없고 벽난로가 전부예요. 가스통을 들여놓고 요리를 하고 있지요. 침실은 4개가 있는데 막 그렇게 안락하진 않지만 지낼만 해요. 옛날 프랑스 시골정취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답니다. 아무때나 놀러와요 대환영이예요!" 
 
"샤또가 저렇게 큰데 침실이 네개밖에 없어요?" 
 
내 질문에 에리카가 대답했다. 
 
"원래 저런 성은 1층 거실이 엄청 크잖아. 주민들이 세금내러 우르르 몰려오는 곳이니까. 상상가지?" 
 
아 그렇구나! 영화의 한장면이 막 떠오른다. 
 
 
"우리 샤또 바로 맞은편에는 커다란 성당이 있어요. 동네사람들이 내집처럼 관리해서 지금까지도 상태가 아주 좋아요. 동네 주민 중 두사람이 그 성당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열쇠가 이따만해요! 그걸 무겁게 들고와서 문을 열어주고 구경을 시켜주는데 깜짝 놀랬지뭐예요!" 
 

구글에서 검색한 참고용 사진

 
"이거왠지 놀러가면 같이 공사할 것 같은데...?" 
 
"공사도 같이 좀 거들면 고맙고요! 하하" 
 
나는 바로 스테판에게 악수를 청했다.
공사쯤이나 얼마든지 도울수 있다. 매년갈게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ㅋㅋㅋ
 
나중에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들으시더니, 자서방은 절대 안갈거라고 하셨다. 침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ㅎㅎㅎㅎ 혼자 호텔 잡겠지ㅎㅎㅎ 
 
자서방은 공사하는게 싫어서 집 고를때도 추가 공사가 일체 필요없을만한 곳으로 골랐다. 같은 가격으로 비슷한 위치의 단독주택도 살수 있었는데, 방치된 정원과 낡은 한겹유리창들을 볼때마다 자서방은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물론 나도 그리 부지런한 편은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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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영주부부가 된 사연을 듣다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술이 술술 들어갔다. 
 
샴페인 두잔, 화이트와인 한잔, 레드와인 한잔에 취기도 적당히 올라오고 배도 부르고... 
 
이제 디저트차례인가... 더 먹을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때 우리의 호스트 스테판이 우리를 모두 일으켜세웠다. 
 
"자, 디저트에 앞서서 가볍게 동네 한바퀴 산책을 제안할까하는데 어때요? 이 뒤쪽으로는 안가봤지요? 완전 마음에 들거예요!" 
 
자신있는 그의 목소리에 우리는 모두 기쁘게 일어섰다. 
 
한낮의 기온이 고작 20도... 하지만 해가 들어서 걷기에 딱 좋은 가을 날씨였다. 스테판최고!
 
아, 가벼운 산책이라고 했지만 막상 걸어보니 한시간이 넘는 엄청난 코스였다는건 안 비밀. 
 
가볍지않은 산책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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