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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이란 친구에게 듣는 반히잡, 반정부 이야기

by 낭시댁 2022. 9. 29.

우리반에는 이란인 남학생이 한명있다. 고국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은 모자를 쓰고 왔는데 머리를 삭발한듯 했다.

"머리 짧게 잘랐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는 알아봐줘서 고맙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날씨가 추워지는데 괜찮겠어? 실연당했나?"

내 농담에 그는 진지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은 이란 정부에 대항하는 의미로 이란인들 사이에서 삭발운동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는 목소리를 조금더 높여서 반 전체를 향해 말했다.

"오늘 저녁에 스타니슬라스 광장에서 이란인들의 반정부 집회가 있을 예정이야. 혹시라도 관심이 있다면 와도 돼. 주말에는 파리를 포함한 여러 도시에서 집회가 있을거구."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란은 국교가 이슬람교가 아니다. 다른 종교들이 섞여있는데 나라에서 모든 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히잡을 강요한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카톨릭 신자들도 히잡을 써야하고 외국인 관광객들 조차도 안쓰면 잡혀간단다. 나라에서 히잡을 강요한건 불과 40년밖에 안됐고, 그 전까지 이란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도 입고 자유롭게 꾸미고 다녔다고 한다.
히잡은 여성들만 쓰는거긴 하지만 그동안 정부에 반감이 많았던 남녀전체 국민들의 불만이 이번에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듯 했다.

나는 내 반대쪽 옆에 히잡을 쓰고 앉아있던 모로코인 친구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는 히잡 쓰는거.. 괜찮아?"

"응 나는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거야. 아무 문제 없어."

그걸 듣고 있던 카자흐스탄 친구가 말했다.

"카자흐스탄에도 무슬림이 많은데 히잡은 선택이라서 대부분 안써. 근데 내 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히잡을 쓰겠다고 해서 온 식구들이 진심이냐며 놀랬던 적이 있었지ㅎㅎㅎ 근데 3년도 안돼서 다시 벗어던지더라고ㅎㅎㅎ 다신 안쓸거래."

생각해보니 우리학교에 이란인 여학생들이 꽤 있는데 히잡을 쓴 친구는 한명도 못봤다. 이란인 친구말에 의하면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대부분 이란정부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정말로 행운이었던것 같다. 무슬림도 아닌데 히잡을 강요하는 이란 정부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럽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한데 이란인 친구가 점점 흥분해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옆에 앉았더니 내 머릿속이 울리는 기분... 내가 괜히 너무 많은 질문을 했나보다ㅎㅎㅎ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정말 고마워. 나는 너희들을 지지하고 행운을 빌어. 그런데 말이야... 가끔씩 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놀랄때가 있으니 목소리는 아주 조금만 작게 말해주면 정말 고마울것 같아."

저쪽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우리에게 오셔서 웃으시며 내 말을 거드셨다.

"맞아요.. 가끔씩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지더라구요. 나도 조금만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다행이다. 나만 느낀게 아니었어 ㅎㅎ


쉬는시간,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는 친구들에게 이란인 친구가 내 말에 맘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카자흐스탄 친구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마, 넌 예의바르게 말했어. 그리고 넌 몰랐겠지만 걔한테 그렇게 말한건 네가 처음이 아니야. 😂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그녀 알지? 소그룹 토의할때 이란인친구가 딱 몇마디 시작하자마자 그녀가 딱 잘라서 말하더라. [여긴 너 혼자 있는게 아니잖아!]라고ㅎㅎㅎ 그렇게까지 다이렉트도 말하다니...😂😂😂"

워낙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한데 모여있다보니 매일매일 흥미로운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번 학기도 정말 재미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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