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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시종일관 유쾌했던 생일 홈파티 feat.라끌렛

by 낭시댁 2023. 12. 18.

지난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낭시에서 가성비 갑인 케이크를 발견했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3정거장을 걸은 후 드디어 엘라의 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폭우라서 운전하는 엘라가 너무 불안해보였다ㅎ

 

"너는 참 친절해. 어제 단톡방에 사람들한테 차로 태워줄 수 있다고 모두에게 제안하다니... 나 버스탔음 벌써 도착했는데..."

 

그렇다. 그녀의 친절에 나만 낚였다ㅋㅋㅋ 

 

운전하면서 숨이 넘어가라 깔깔 웃던 그녀가 대답했다. 

 

"비를 예상 못했어 미안해. 대신 이따 집에갈때 내가 집까지 태워줄게. 오늘 맘껏 마셔. 난 술 안마시잖아." 

 

아하! 역시 천사 엘라! 오늘 맘껏 마셔야지ㅋ 

 

"근데 오늘 왜이렇게 일찍 만나는거야? 에리카는 보통 7시부터 달리는데 오늘 5시라고 하길래 놀랬어." 

 

내 질문에 엘라가 말했다. 

 

"정확히 오늘 파티는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라고 말했어."  

 

"나한테는 그냥 5시까지 오라고만 했는데? 아... 작년생일때 너랑 카밀로랑 둘은 다음날 아침까지 있었지?ㅋㅋㅋ"  

 

"아 그래서 나랑 카밀로한테만 말했나봐ㅋㅋ"

 

앞으로 다들 초대할때는 끝나는 시간을 이렇게 미리 알려주면 서로 편할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오늘 집으로 태워다 줄 기사가 생겼네. 

 

 

에리카네 집에 드디어 도착했더니 반가운 친구들이 한명한명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 정말 좋다 내 친구들! 따뜻한 분위기 너무 좋다. 

 

에리카는 나를 위해 스프리츠를 바로 제조했다.

나와 엘라는 우리가 어떤 험난한 시련을 뚫고 여기까지 도착했는지 젖은 양말과 바지를 자랑하며 실컷 떠들었다.  

 

 

탄산수 제조하는 기계는 처음보는데 소리가 좀 요란하기는 해도 성능이 아주 좋았다. 이 추운 날씨에 나와 엘라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ㅎㅎ 탄산수에 얼음까지 넣고 한잔 들이키니 기분이 좋았다. 

 

스프리츠를 두잔째 비웠을때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작년과 동일하게 라끌렛이다.

 

아주 친한 친구들만 초대한 덕분에 작년에 비해 많이 차분하고 정다운(?) 분위기라 너무 좋았다. 작년에는 엄청 시끌벅적했고 대화가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이뤄져서 정신이 좀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함께 대화를 나누고 또 귀기울였다. 

맨 위에는 빵이나 베이컨등을 굽고 그 아래로 각자 라끌렛도 녹이고 초리소나 잠봉을 구워서 감자랑 같이 먹었다. 

고소하게 녹은 라끌렛과 삶은 감자- 너무 맛있다. 

한참 먹다보면 왜 이게 겨울 음식인지를 깨닫게 된다. 

 

열기때문에 얼굴은 뜨겁고 치즈의 열량때문인지 속도 후끈해져서 술이 자꾸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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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의 남친 마이크는 이번에 가장 절친 두명만을 초대했는데 나는 두사람 모두 구면이었다. 

 

"그러니까 기욤은 너랑 중학교 동창이고... 샤흘은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사이라고?" 

 

내 질문에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샤흘이랑은 아주 아기때부터 친했어. 우리 엄마랑 쟤네 엄마 둘다 필리핀 출신인데다 프랑스인과 결혼하셔서 친하시거든. 우리는 아기때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

 

"와... 오래된 친구들이라니 정말 멋지다. 난 한국에서 제일 친한 친구들은 고등학교때 친구들인데 그마저도 전국 각지로 흩어져있어서 얼굴 보기가 어려워서 안타까워."

 

내 말에 알마가 대뜸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있잖아."

 

"맞아! 나 오늘 너희들을 만나서 너무 행복해. 너희들 모두를 사랑해." 

 

다들 내 말에 동조하며 한마디씩 던지는데 카밀로가 딴짓을 하고있네? 

 

"카밀로? 너두?" 

 

가장 막내인 카밀로가 귀여운 두눈을 꿈뻑거리고 있을때 옆에 엘라가 "그냥 그렇다고 말해." 라고 귀뜸을 해 주었고, 마지못해 카밀로가 "예스"라고 대답하며 씨익 웃었다. 

얼라? 샐러드 바구니에 웬 말라가는 고추가 딱 한개 있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들었다가 한개뿐이라 그냥 반만 자르고 다시 넣어놨다.

 

"네가 좋아할 것 같더라고."

 

"이거 어디서 산거야?"

 

그녀는 혼자 깔깔 웃더니 말했다.

 

"나 이번에 마이크랑 파리갔다가 사티쉬 만났잖아. 걔네집에 갔었는데 냉장고에 고추가 딱 한개 있더라? 이거 어디서 샀냐고 너처럼 똑같이 물었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딱 한개 소중하게 들고와서 아껴놓은거야 ㅋㅋㅋ"

 

사티쉬는 에리카의 인도인 친구인데 내 나이 또래인데 엄청난 수다꾼이다.

 

비록 시들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고추 너무 맛있다!! 

 

내 표정을 본 몇몇 친구들이 조금씩 잘라갔는데 매워서 못먹겠다며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남은 고추도 결국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야 땡큐지ㅋ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랬다. 맵지도 않냐며. 

 

"매운맛을 즐기는거지." 

 

내 대답을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에리카는 가족들과 파리에 갔던 에피소드도 여러개 들려주었다. 

 

"나랑 남동생 두명이랑 엄마랑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거기 리셉셔니스트가 필리핀사람이더라고. 필리핀 사람들은 초면에도 엄청 살갑거든? 그녀가 우리 엄마를 보고 우리가 다들 친자녀들이냐 묻는거야. 우리 엄마가 맞다고 하니까 그녀가 이런다? '왜 다들 다르게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뭐라고 대답하신 줄 알아?" 

 

과연 그녀의 어머니는 뭐하고 대답하셨을까. 

 

"아빠가 다 다르니까요. 얘네 아빠는 필리핀, 얘네 아빠는 아랍인, 그 다음엔 러시안 남편을 만났었고 지금은 프랑스인 남편을 만났거든요." 

 

그 말을 들은 리셉션직원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오... 쿨...!"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그녀를 향해 에리카네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하셨단다. 에리카의 실감나는 표정 연기에 다들 쓰러졌다. 

 

이래서 나는 솔직한 필리핀사람들이 좋다. 나의 두번째 고향은 필리핀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프랑스가 그에 버금가는 의미가 되었네.

 

 

 

 

할 말이 너무나 많은 관계로 ㅋ 유쾌한 파티 에피소드는 다음 포스팅에 또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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