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게로 60대쯤 보이는 마담이 한 분 오셨다.
"오 한국 음식이군요? 저 한국음식 참 좋아해요. 저는 서울에도 다녀왔답니다."
보통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손님들은 대게 대화를 원하지 음식은 주문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말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냥 서울에서 이런거 먹어봤다, 난 한국 드라마 좋아한다, 혹은 내 지인중에 누군가가 한국에서 유학중/ 근무중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녀는 메뉴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비빔밥은 없네요. 난 비빔밥 좋아하는데."
"비빔밥 있어요."
"보통 비빔밥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지요? 저는 고기를 별로 안좋아해서..."
"소고기 대신에 두부로 넣어드릴게요."
그렇게 그녀는 (왠지 얼떨결에?)두부 비빔밥을 하나 주문하게 되었다. 대신에 한 시간 후에 다시 와서 사갈거라면서 일단(?)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제가 서울에 왜 갔었냐면요.. 제 친구를 만나러 간거였어요."
"네..."
아직까지는 그다지 흥미롭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마담의 표정에는... 뭔가 있었다.ㅋ
"그 친구는 당신도 아는 사람이에요."
"제가요? 어떻게요? 한국인이예요?"
마담은 소녀처럼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남자배우거든요. 젊고 엄청 잘 생겼어요. 이름을 말하면 당신도 분명 아는 사람이에요."
"우와! 그 한국인 남자배우가 친구라구요? 누구예요? 이름이 뭐예요??"
드디어 마담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나는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마담은 참으로 김빠지는 대답을 했다.
"비밀이예요. 호호 말하고 싶은데 말 할수 없어요."
으잉.
마담은 더 말해주고 싶은데 밝힐 수가 없다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내가 지금 사춘기 소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건가.
"그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되신거예요?"
이건 말해 줄 수 있겠지.
"인스타그램!"
아.... 난 또...
흥미가 떨어졌다.
인스타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지...
내 표정을 본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그게 전부가 아니라며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 사람이 파리에 왔을때 실제로 처음 만났다구요."
하지만 단둘이 만났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뭐.
"그 후에 제 친구한테 이 사실을 말해줬는데 친구가 조언해주기를 어디가서 이 이야기를 할 거면 그 남자 배우의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왜요?"
"후훗 그것도 비밀이예요."
"젊고 잘생기고 유명한 한국 남자 배우라구요?"
"아~주 잘생기고 아~주 유명해요."
마담의 표정은 마치 내가 그 남자 배우가 누군지 맞춰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덕분에 나 혼자 머릿속에서 온갖 시나리오를 떠올려보았다.
인스타에서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다가 파리에서 실제 만났는데 그게 왜 비밀인거지. 그리고 저 마담 표정은 왜 저렇게 사춘기 소녀처럼...ㅋ
잠시 후 SK가 왔을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리는 함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 보았다ㅋㅋ
한 시간 쯤 후 그 마담은 다시 돌아왔고 약속대로 두부 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SK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보고 감탄하던 그 마담은 내 프랑스어는 별로라는 식으로 말하며 SK에게 내가 학생이냐고 물었다. 내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가 있지???
SK는 대꾸하기 귀찮은 듯 그냥 내가 학생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대신 "그녀도 프랑스어 잘하는데요?" 라고 반박했다. 마담은 살짝 당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그럼요. 지금은 학생이니까 나중에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쯤이면 프랑스어 실력이 아주 훌륭할거예요. 한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프랑스어 참 잘한다고 다들 놀래겠지요."
참나...
무례한 마담이었네.
나중에 버거씨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버거씨는 다른건 하나도 안듣고 이 말만 기억하는 듯 했다.
"너더러 학생이라잖아! 네가 어려보였다는 증거지. 내 여자친구는 학생이다! 에뛰디엉뜨!! 하하"
아무튼 그 마담과 오프라인으로 만난 젊고 잘생기고 유명한 한국 남자 배우는 누구일까.
살짝 미스테리하긴 하네.
왜 비밀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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