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날.
날씨가 너무나 화창했다.
영하의 기온으로 많이 쌀쌀했지만 하늘은 새파랗게 맑았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슬슬 낮잠이 몰려오던 중이었는데 버거씨가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했다. 그럴까...?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맞장구를 치셨다.
"그래, 이런 맑은 날에는 나가서 야외 활동을 하는게 좋지. 안하면 손해야."
"그럼 같이 나가실래요?"
"아니야. 나는 남아서 목욕을 할거야."
예상과 너무 다른 대답에 나와 버거씨가 빵 터졌다.
웬일로 아들들도 같이 산책을 따라오겠다고 나섰고 덕분에 어머니는 혼자서 평화로운 목욕을 즐기실 수 있게 되셨다.
우리는 차로 모젤 강변으로 나갔다. 자주 와 본 모젤 강변이지만 이쪽 산책로는 처음 와 본 곳이었다.
한겨울의 새파란 하늘이 시리도록 맑구나.
기온이 낮긴 해도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꽤 있었다. 강아지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네 사람은 맑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듬뿍 마시며 무리지어(?) 걸었다. 아들들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자기네끼리도 큰소리로 떠드는 법이 없다. 내가 아는 형제 키우는 집들은 대부분 소란스럽던데...
덕분에 오늘도 버거씨는 혼자 떠들고 있었다.
"우리 엄마 말 진짜 많지. 내 성격이 어디서 온 건지 이제 깨달았을거야..."
버거씨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나는 풉하고 웃어버렸다.
진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 정말 말씀이 어마어마하게 많으셨다. 버거씨가 괴로워할 정도면 말 다했음.. ㅡㅡ; 휴대폰에 있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 보여주시면서 설명해 주셨고 심지어 우리가 요리할때는 옆에서 장문의 이메일을 통채로 큰소리로 읽어주기도 하셨다.
"근데 혼자 사시다가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너무 들뜨신것 같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니까 같이 계실때 그냥 다 들어드려."
"나야 자주 있는 일이니까 괜찮은데 너는 좀 괴로울 것 같아서... 그래도 네가 친절하게 엄마한테 잘 맞춰줘서 내가 너무 고마워."
"ㅋㅋㅋ 아니야 나는 어차피 프랑스어 잘 못알아 들어서 괜찮아. 그리고 한국에 관심이 많으셔서 내가 더 고맙지 뭐."
"너랑 셀피 찍으실 때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 누나한테도 벌써 사진 보내셨대. 아마 여기저기 자랑 하실거야. 엄마한테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보는 사람마다 사진을 다 보여주실 것 같더라고. 그래서 찍어드렸어. 이제 사람들한테 보여줄 사진이 또 하나 늘었네? 여기는 내 아들 여친이라우~ 하면서ㅋ"
공기는 얼음처럼 찬데 햇빛은 뜨겁게 얼굴을 녹여준다.
겨울 강 운치 있네.
버거씨는 내 손이 시릴까봐 꼭 쥐고는 자기 주머니에다 집어 넣었다.
참 따숩다.
겨울 햇살도
버거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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