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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괜찮다 괜찮다

by 요용 🌈 2025. 1. 31.

변호사 상담을 이제서야 받았다.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변호사가 갑자기 일정을 미룬 관계로 헝데부가 며칠 지난 후 화상으로 변호사를 만날 수가 있었다. 
 
젊고 인상이 좋은 여성이었다. 
 
한 시간 정도 상담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변호사는 원하는 경우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빠르고 간단하게 합의이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합의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위자료는 요구할 수 있다며 그 근거들을 나열했다.
 
그냥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버거씨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변호사가 말하는 근거들을 다 수집해보자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혼만 하면 될 것 같다. 충치났던 내 사랑니처럼... 그냥 깨끗하게 뽑아버리고 잊고싶다. 
(이래놓고 나는 그 충치나서 뽑아낸 못생긴 사랑니를 이따금씩 꺼내서 들여다보곤 한다. 말 나온 김에 내다버려야겠다.) 
 
내 비자는 이혼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대신에 이혼전에 공식적으로 별거상태를 신고하고 새 주소로 신분증을 재발급받으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 절차도 내 눈에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않는데 위자료 서류 수집은 더더욱 엄두가 안난다. 작년의 그 혼란스러웠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는건 그냥 피하고 싶다. 상담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보니 내 정신 수양이 생각보다 부족했구나 싶었다. 
 
버거씨 말에 의하면 이혼을 하면 세금도 줄고 주택보조금도 다시 받을 수 있게될 지 모른단다. 그럼 그냥 이혼만 해도 되겠다. 
 
내 심경이 복잡해보였는지 변호사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이 결혼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그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순간 옆에서 안도하는 듯한 표정의 버거씨 얼굴이 보였다. 내가 가끔 표정 관리가 안되나보다. 
 

 
위자료는 필요없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냥 안할란다. 
돈 좋아하는 당신과 어머님 다 가지세요. 축하합니다. 
 
코인 투자에서 번 돈으로 그는 아파트 가격 절반을 현금으로 결제했다. 
리플가격이 곤두박질치는데 그걸 살 돈이 부족하다고 급하게 빌려달래서 석달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태국바트로 빌려줬었다. 작년에 집 나올때 그 돈이라도 돌려달라고 말했더니 그는 현금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한달에 400유로씩 보내준다길래 그 말을 어떻게 믿냐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빌린 돈에 대한 내용을 문서로 남기고 싶은거라면 자긴 절대로 안할거고 돈도 안줄거라고.
그냥 아무말 안했다. 싸우는것도 지겨워서.
문서도 안 만들었는데 안주더라. 그냥 그거먹고 떨어져라. 아, 내가 떨어지는거구나 참. 안먹고 내가 떨어질게.
 
우리 엄마가, 우리가 돈이 없어서 결혼반지를 못사는 줄 알고 반지 사는데 보태라고 주신 돈. 나보다 취향이 까다로우니까 니가 원하는걸로 고르라고 돈을 줬었는데 반지도 안사고... (내가 결혼반지 사자고 몇 년을 졸랐는데) 그 돈도 리플사는데 썼겠지. 얼마 안되지만 그 돈만은 꼭 돌려 받아야겠다. 우리 엄마 돈이니까.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다가 조금 서러워서 버거씨 한테 하소연하다가 조금만 울었다. 
 
버거씨가 없었다면 나는 이혼을 준비할 용기도 못 냈겠지.
 
나를 위로해주는 버거씨한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나중에... 고양이 길러도 돼?" 
 
버거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그럼 다 괜찮아지겠다."
 

 
무스카델한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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