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주말농장에는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2주전 아빠는 저녁 식사 도중에 고구마를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넌지시 흘리(?)셨고,
마침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언니와 할머니는 참여의사를 확실히 밝히며 소풍이라도 가는것 마냥 엄청나게 들떠버렸다.
언니는 조카들이 흙도 만져보고 고구마를 직접 수확하는 기쁨을 느껴보게 하고 싶다는 취지였고
할머니는 도시락 도시락을 연신 강조하셨다...
도시락은 누가 싸냐고 했을때 가만히 있던 나에게로 시선이 모아지는건....
그래.. 나 백수다...
뭐 나는 김밥을 엄청나게 좋아하므로 내가 싸도록 하지-
우리집에서 나는 이미 김밥을 맛있게 싸기로 유명.... ? 아 그러고 보니.. 그냥 자꾸 잘한다고 칭창해 주면서 시키는거구나...
고구마 캐러 가기 전날 할머니는 미리 오셔서 도시락 준비를 거들겠다고 하셨다. 그냥 아침에 대충 싸면 되는뎅-
입이 벌써 귀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을때마다 내일 도시락 싸서 딸사위손주들이랑 고구마를 캐러간다며 자랑자랑 하셨다 ㅎㅎ
내가 좋아하는 김밥은 어묵김밥.
그리고 야채는 많이 많이. 야채는 뭐든 상관없다. 그냥 제철야채면 된다.
집앞 마트에서 한단에 천원씩 하길래 사온 시금치와 아빠가 얻어다놓으신 고구마줄기가 있어서 데쳐서 넣었다.
전날 할머니랑 야채를 미리 준비해 놓았고 다음날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쌌다.
총 13줄을 싸서 한줄은 내가 싸면서 집어먹고 12줄을 통에 담았다.
고구마 줄기를 넣겠다고 했을때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 하셨지만 역시 어떤 야채든 김밥에 넣으면 다 맛있다.
사진보니까 또 먹고싶다. 내가 쌌지만 정말 맛있었음..
기왕 할머니가 소풍이라고 하셨으니 사이다도 한병 샀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 지길래 컵라면도 몇개 담았다.
사과도 몇개 넣고, 언니가 귤이랑 과자도 가져와서 푸짐하게 먹었다.
고구마 수확이 주 목적이 아니라 우리는 가족소풍을 간게 맞다.
주말농장에 평상이 있어서 가자마자 싸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ㅎㅎ
밥 다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느긋하게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쌀쌀하더니 일을 하다 보니 땀이 나서 외투를 다 벗어 던지고 일을 했다.
호미로 땅을 파고 조카들은 고구마를 수거했다.
나중에 고구마들을 다시 한데 부어놓고 상태에 따라 선별을 했다.
고구마를 캐면서 우리가 호미로 찍기도 하고 벌레가 파먹은 것도 있고.. 멀쩡한 것들도 있고..
총 3박스나 나왔다. 생각보다 풍년이란다.
저거 캐고 선별하는데 한시간도 안 걸린것 같다.
밥먹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ㅎㅎ
유난히 큰 고구마가 나올때마다 조카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구경했다.
할머니는 고구마를 캐는 대신에 고구마 줄기를 채취하셨다.
이게 그렇게나 맛있으시다고..
처음에는 그냥 조금만 뜯고 가자고 하다가 할머니가 포기를 안하셔서 결국 온 식구들이 또 둘러 앉아서 저걸 뜯었다 ㅎㅎㅎ
우리가 남겨놓은 저 덩쿨에 주변 농장주들도 와서 꽤 많은 줄기를 뜯어갔다. 끝없이 줄기가 나오는 고구마 덩쿨..
맛있긴 맛있나보다.
내년에 여든일곱이 되시는 우리 외할머니-
정말 이런 사소한 이벤트에 소녀같이 너무 좋아하셔서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내가 집에 와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시며 내가 와 있는 동안에는 자주 놀러 오신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나를 따라 다니며 세계여행을 해 보고싶다고 말씀하신다. 같이 가자고 하면 몸이 말을 안들어서 멀리는 못간다고 하시고.. ㅠ.ㅠ
그래서 나는 틈이 날때마다 할머니한테 사진을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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