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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이 컵 깨면 가족이 아니라는 시어머니

by 낭시댁 2020. 7. 28.

시부모님께서 주말 점심 식사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시어머니의 사촌 언니인 크리스티안도 온다고 하시며 오랫만의 가족모임에 꽤 들뜨신 것 같았다.

그렇게나 매일 받고 살면서도 우리는 염치도 없이 빈손으로 갔다. (막상 도착할 때 다 돼서 빈손인걸 깨달았다. 하도 당연한듯 매일 드나드는 곳이라 자각이 늦었다.)

도착했더니 먼저 와 계시던 크리스티안이 우리를 세상 반갑게 맞아주셨다. 

코비드만 아니었으면 내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세례를 주셨을 분이다. 

 

 

 

 

 

 

 

 

 

초대받지 않은 진상이 테이블 위로 난입했다. 진상이긴해도 테이블 위에 뭐 하나 건들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걷다가 금방 내려갔다. 그저 궁금했을 뿐-

크리스티안은 남자친구가 코비드 중환자라 몇달째 자가 호흡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때문에 꽤 상심이 커서 외출도 안하고 지내던 상태였는데 시어머니께서 그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셨는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밝고 유쾌한 모습이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자서방과 크리스티안이 둘이서 수다가 폭발을 해서 시어머니께서 나더러 남편 안뺐기게 조심하라고 하셨다. 여든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고 유쾌한 그녀이다. 

"나 생각해보니까 한국에 가본 적이 있더라고. 50년 전에- 너희는 태어나기도 전이구나."

"50년전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그래서 어땠나요?"

"그때 남편이 출장가는데 따라가서 딱 3일만 있었거든. 많이는 못봤고... 채석장을 봤는데 굉장히 멋졌지..."

정말 보신게 없나보다... 

 

 

 

 

구운 감자, 오븐스테이크, 토마토, 그린빈- 

식사를 차리시면서 시어머니께서 큼직한 물컵을 인원수대로 내오셨는데 크리스티안이 이 값비싼 물건으로 물을 마시냐고 눈을 휘둥그레 뜨셨다. 

그랬더니 크리스티안이 컵을 뒤집어서 브랜드를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바카라잖니~ 비싼거야~"

워낙 시어머니께서 크리스탈을 좋하셔서 같은 브랜드의 화병이나 잔들을 시댁에 봤을때도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싼지는 몰랐음...

 

 

 

 

여전히 멀뚱거리는 나에게 크리스티안이 또 말했다. 

"너 이거 한번 깨 봐라. 너네 시어머니 뭐라고 할 지 궁금하다."

그걸 들으신 우리 시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쓸대없는 소리니까 듣지 말거라... 이거 뭐 깨면 어쩔수없지... 그러면 너는 더이상 가족이 아닌것이야..."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내 컵을 돌려드렸다. 

"저는 물 안마셔요... 와인이면 돼요... 진짜로요..." 

다들 빵터져서 깔깔 웃었다. 

나는 90% 진심이었다. 식사중에는 물도 잘 안마실뿐더러 내 앞에 뒀다가는 왠지 깨먹을것 같았다. 

 

 

 

 

식사 후 먹은 마카롱. 아몬드가루가 씹혀서 뭔가 피낭시에와 마카롱의 중간쯤 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운데에 필링이 들어간 것 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매우 토실한 (엉덩이를 가진) 과즙 터지는 살구- 

이거 때문에 모웬이 눈이 돌아갔다. 

 

잘 먹고 잘 마시고 그리고 또 어찌나 많이 웃고 떠들다 왔는지 집에 오니 피곤해졌다.ㅎㅎ 

크리스티안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시어머니와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만날때마다 웃음과 사랑이 넘친다. 

그리고 모두가 떠난 후 시부모님이 적적함을 느끼진 않으실까 조금 걱정도 된다. 

모웬, 나머지는 너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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