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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댁 깻잎 절단 사건

by 낭시댁 2022. 7. 16.

어머님께서 장보러 가셨다가 나를 위해 무를 사오셨다고 해서 시댁에 갔다.

안그래도 무피클이 다 떨어져서 만들때가 되긴 했는데 아주 잘됐다! 무피클을 담아놓으면 라면먹을때 같이 먹고, 김밥도 싸먹고, 닭튀김 먹을때 치킨무로 같이 먹어도 맛있어서 좋다! (조만간 피클대신 동치미를 담아서 국수를 말아먹어야겠다!)

테라스에 시부모님과 둘러앉아서 차를 마셨다.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살구를 몇개 집어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살구 클라푸티를 만드셨다며 갈 때 가져가라고 하셨다.

"좋지요!! 저 깻잎도 좀 가져가야겠어요. 삼겹살에 싸먹게요."

어머님께서 살구 클라푸티를 담으러 부엌으로 가셨을때 아버님께서는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으시다며 따라오라고 하셨다.

뭘까...?

아버님은 정원 구석에 있는 작은 텃밭으로 가시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제 내가 시험삼아서 두뿌리만 땅에 옮겨심어봤거든. 근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렇게 돼 있더라구..."

헐? 깻잎이 줄기채 잘라져있네...?

"민달팽이는 아니야. 줄기채 위에서 부터 먹진 않으니까."

사실 이게 대단히 큰 일은 아닌데도 아버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심각하셔서 나까지 덩달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

옆에 따라온 고양이들을 잠깐 의심했지만 아버님은 고양이들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 너희들도 깻잎은 맛이 없지...?

그때 어머님께서 다가오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깻잎이 원래 맛이 그렇게 강하니? 어제 샐러드에 넣으려고 맛을 봤는데 너무 강해서 못먹겠더라."

나와 아버님은 그 순간 자동적으로 눈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서로 비슷한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어머님, 깻잎 언제 드셨어요?"

"어제 저녁에."

아버님도 취조하시듯 질문을 하셨다.

"줄기채 먹었소?"

결국 분위기를 파악하신 어머님께서 버럭하셨다. ㅋㅋ 그냥 이파리만 딱 하나 뜯어서 맛본것이 전부라고 하시며 재연까지 해보이셨다. 이르케 이르케 땄다고...ㅋㅋ

다행히 아버님께서 두줄기만 옮겨심으셨기 때문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내가 화분에서 깻잎을 뜯고 있는 순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의 소소한(?) 말다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누군가에 의해 잘린거야!(Coupé)"

"아이고, 이걸 누가 잘라요! 그냥 부러진거지! (Cassé)"

"꾸뻬!"

"까쎄!"

나는 옆에서 프랑스어 꾸뻬(coupé)와 까쎄(cassé)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가 있었다.

어머님 저두 속으로 의심했는데 죄송합니다.

참고로 두분의 말다툼은 진정 뒷끝이 없다. 바로 점심메뉴등으로 화제가 넘어가면서 없던 일이 되곤 한다.

아직 이파리가 너무 작지만...

어머님께서는 살구 클라푸티 뿐만 아니라 스무디로 먹으라고 하시며 직접 만드신 망고 퓨레도 한병 주셨다.

한국무만큼 맛있진 않지만 아쉬운대로 길쭉한 무도 반갑기만 하다.

낮에는 삼겹살 두줄을 양념에 재운 후 굽고 상추와 깻잎에 싸먹었다.

깻잎이 빨리 자랐으면 좋겠네... 더 많이 먹게ㅎㅎ

역시 깻잎의 파워!

아참, 부러진 깻잎들은 아버님께서 열심히 물을 주신 덕분에 며칠만에 잎사귀들을 키워냈다.

두분은 항상 저 깻잎들이 내꺼라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50%는 시부모님의 소유라고 정정해드렸다. 아버님께서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시며 키워주시니 너무너무 감사드릴 뿐이다.

결국 범인은 영영 미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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