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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프랑스인들이 야외공연을 즐기는 법 - 딸기축제

by 요용 🌈 2024. 8. 25.

6월의 일이었다. 
에리카가 주말에 딸기축제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작년에는 인공수정 당일이라 못따라갔는데 나만빼고 친구들 다들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해서 부러웠던 바로 그 축제! 올해는 꼭 가야징. 
 

출연가수들을 봐도 나는 누가 누군지 모르기때문에 대충 봤다. 그냥 야외에서 라이브공연 감상하면서 딸기먹고 군것질하고 맥주마시는거니까 재미가 없을수가 없지. 
 
어느새 나의 +1의 존재가 된 버거씨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당일날 공연장소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벌써 바글바글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게도 빈 테이블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필리핀 커플은 역시나 오늘도 늦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합석을 요구했는지 모른다. 매번 거절하기도 계속 미안하던 차에 에리카와 마이크가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그 둘은 가방에서 바리바리 싸온 맥주와 프로세코, 그리고 안주들을 끝도없이 꺼냈다. 아 역시 이 사랑스러운 친구들ㅋㅋㅋ 

공연장 주변으로 푸드트럭이 여러개 있었는데 버거씨가 가더니 딸기랑 포케를 사왔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빗방울이 살짝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아래에 있어서 한방울도 안맞았다 헤헤

잠시 후 피자박스를 하나씩 들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두분이 오셔서 합석이 가능한지 물으셨다. 버거씨가 얼른 일어나서 우리 옆에다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친절한 버거씨...
하지만 내 눈엔 그 할아버지들이 들고있던 피자 박스에 고정돼 있었다. (지금 막 포케 한그릇 뚝딱했으면서=ㅋㅋ)
 
저건 무슨 피자일까... 
 
각자 한판씩 드실건가보다...
 
피자가 무슨 모양인지 궁금하던차에 할아버지들이 따끈한 피자 박스 두껑을 열었다. 오아.... 냄새 너무 좋다... 
 
내 표정을 보고 할아버지 한분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맛있겠지요?" 
 
그 말에 내가 정신을 퍼뜩 차렸는데 버거씨와 할아버지들이 내 표정을 보고 껄껄 웃었다. 
 
"피자 먹고싶어?" 
 
버거씨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할아버지들이 버거씨에게 경고를 하셨다. 
 
"이거 한 시간 줄서서 사온거유. 지금가면 더 오래걸릴지도 모르니까 각오 단단히 해야 돼..." 
 
그 말에 내가 버거씨한테 피자 안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눈빛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을것 같다. 버거씨는 결국 일어섰고 나는 진짜 괜찮다고 말렸다.
 
"일단 한번 가볼게. 한시간 넘게 걸릴것 같으면 그냥 올거야." 
 
그래 그럼... 당신의 나의 히어로...
 

 
버거씨는 다행히(?) 40분 만에 돌아왔다. 따끈한 피자 두 상자를 들고서 영웅처럼 당당하게 웃으며 걸어왔는데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한상자를 에리카 커플에게 주고 한상자는 우리가 먹었다. 진심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걸 보고 옆에 할아버지들이 또 웃었다. 드디어 먹게되었냐고. 그렇게 맛있냐고 ㅋㅋㅋㅋ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눈으로만 웃어드렸다. 입은 바빴으므로. 
 

 
공연의 열기가 점점 무르익어갔다. 
어느순간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 나이든 남자가수가 올라왔는데 왕년에 꽤 유명했던 사람인가보다. 앞에 앉은 마이크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는 모르는 노래라고 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은발의 세 남자가 (버거씨와 할아버지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순간 웃음이 빵터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 나이든 사람들만 열광하고 있네 ㅋㅋㅋㅋㅋ 
내가 웃는걸 보더니 버거씨가 왜 웃냐고 했다. 
 
"마이크는 모르는 노래라는데 지금 당신이랑 할아버지들이랑 셋이서 열창하고 있잖아. 주변을 한번 봐봐. 다들 나이든 사람들만 난리가 났어 ㅋㅋㅋㅋ" 
 
내 말을 듣고 버거씨가 빵터졌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들한테 내가 한 말을 고대로 전하는게 아닌가!? 할아버지들도 빵터졌다ㅋㅋㅋ 그러더니 뭐라뭐라 대답했는데 음악소리때문에 안들렸고 버거씨가 대신 전달해 주었다. 
 
"이 노래가 나왔을때 본인들은 마흔살이었고 나는 15살때였다고 너한테 말해주래." 
 
그후로도 버거씨는 할아버지들과 열창을 이어갔다.
 
은발의 세남자가 베프가 되어서 머리를 흔들며 마주보고 열창하는 모습을 보고 나랑 에리카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안데려왔으면 큰일날뻔했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나 여기에 데려와줘서 정말 고마워."
 
버거씨가 한 말을 에리카한테 전달했더니 에리카가 또 빵터졌다. 진심 너무 즐거운가보다. 
 
"이따 헤어지기 전에 친구들 연락처 받는거 잊지말고." 
 
내 말에 버거씨가 옆에 할아버지들을 가리켰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이들을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하겠는가. 
  

나와 에리카는 공원앞에 있는 아랍가게에 가서 와인과 안주를 더 사왔다. 푸드트럭은 줄이 너무 길어서 엄두를 못냈는데 역시 에리카는 모르는게 없구나. 
 
그후로도 왕년의(?) 가수들이 계속해서 나왔고 옛날 노래들과 팝송들을 불렀고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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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구분없이 다같이 춤추고 노래를 큰소리로 따라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노래자랑에서나 볼 수 있을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열기는 그보다 몇배나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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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운없이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까지 결국 일어나셨다. 까딱까딱 흥겹게 춤추시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까지 너무나 좋아졌다. 

옆 테이블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온가족과 춤추시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살갑게 농담도 하고 나이 상관없이 벌떡 일어나서 춤추고 열창할 수 있는 이런 문화 너무 좋다. 나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좀 있으면 좋겠네. 
 
버거씨 내년에도 오자. 우리도 내년에는 에리카네처럼 먹거리 잔뜩 들고와야겠어. 아, 오자마자 피자먼저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