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어느 일요일, 버거씨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로 나섰다.
내가 지루해할까봐 항상 뭔가를 열심히 계획하는 버거씨는 이번에도 내가 분명 좋아할 거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룩셈부르크로 들어갔던 우리 차는 독일로 진입했다. 어디로 가는지 계속 물어봤더니 결국 버거씨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모젤강을 따라서 드라이브를 할거야. 가는 길에 예쁜 도시들이 많으니까 원하는 곳에 내려서 구경하고 군것질도 하면서 계속해서 가보는거지. 코헴까지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아마 그건 좀 무리일 수 있으니까 갈 수 있는 데 까지 가 보자."
"모젤강? 그거 낭시에도 있는거 아니야? 그게 독일까지 났다고?"
낭시가 속한 주의 이름이 meurth et moselle인데 그건 meurth강과 moselle 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들었다.
"그럼! 모젤강은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까지 이어져. 내가 저녁마다 조깅하러 가는 곳도 모젤강변이고 이곳 독일까지 강변 경치가 너무 예뻐서 드라이브하기 정말 좋지."
불과 얼마전에 룩셈부르크에 홍수가 났었는데 여전히 강변에 물이 굉장히 불어나있는 모습이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독일이고 왼쪽은 룩셈부르크야."
참 신기하다. 다리면 건너면 언어가 달라진다니...
"자, 우리가 방문할 첫번째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트리어(Trierer)라는 도시이다.
광장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와..." 하고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역시 유서깊은 유럽도시에는 이런 광장이 하나씩은 있어야 되는건가보다. 너무 예쁘잖아...
광장에서 기타연주를 하는 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며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멋진 성당이 하나 나타났다.
독일 3대 성당중 하나라는 트리어 대성당.
한눈에 봐도 굉장히 오래되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버거씨는 어릴적 성당에 다녔다고 하는데 커서는 종교를 믿지 않게되었다고 한다. 나도 종교는 따로 없지만 오늘은 왠지 기도를 하고 싶네. 잠시 앉아서 눈을 감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나를 보살펴주심과 이끌어주심에...
신께서 내 삶을 기쁘게 지켜보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거가이드는 그 다음으로 봐야할 명소가 있다며 나를 안내했다.
포르타니그라. 검은 문이라는 뜻이다.
굉장히 크고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사진에는 잘 안담기네.
원래 검지는 않았겠지. 2천년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변한걸거야...
그 시절에는 저기 창문마다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서 있었을것 같아. 도시로 들어오는 외부인들을 한명한명 살피면서 말이야.
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상상력을 동원해보았다.
문화제를 새하얗게 닦으며 보존하는것도 보기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다.
포르타니그라앞으로 테라스가 길게 나 있길래 우리도 앉아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런 활기 참 좋다.
피자를 먹으려고 했는데 버거씨가 좀더 건강한걸 먹자며 권한 메뉴-
베이글샌드위치랑 건강(?)스무디 등등
아주 맛있었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물가가 저렴하다고들 하던데 룩셈부르크 수준으로 비싸서 살짝 놀랐다. 관광지는 어딜가나 비싼가보다.
이 샌드위치가게에서 내가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버거씨가 이렇게 말했다.
"너 남자화장실 가더라.ㅋㅋ"
"음... 남자 한 명이 내가 나오는걸 보고 당황해서 문을 한번 더 확인하더라. 화장실이 하나뿐이라서 나는 남녀공동인줄 알았지. 독일어로만 써져있으니 내가 어떻게 아냐고."
"여자화장실은 윗층에 있다고 써져있었는데...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내 잘못이야."
우리 버거씨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다더니 꽤 잘 하는구나.
점심을 맛나게 먹고나서 우리가 다음으로 도착한 도시는 베른카스텔 쿠에스(Bernkastel-kues)라는 곳이었다. (사실 그 사이에 호수가 예쁜 마을에 잠시 내려서 간식을 먹기도 했는데 그곳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알자스에서 익히 보았던 독일식 건물들이 입구부터 아기자기하게 늘어서있다.
관광객이 많지만 평화로운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절로 웃음나게하는 소품들도 꽤 많이 봤다.
당당한 개구리씨.
양 입모양 너무 웃기다. 옆에 닭이랑 왜 이렇게 다정한건데ㅋ
예쁜 마을을 한바퀴 돌고나서 우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테라스에 앉았다. 독일에 왔으니 맥주는 마셔봐야지.
독일맥주를 마셔야겠다고 큰소리 으면서 나는 빠나셰를 시켰다. 맥주와 아이스티를 섞음 음료- 하지만 독일 빠나셰는 맥주맛이 더 진하네. 프랑스 빠나셰는 음료수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열심히 걷고나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는 정말 맛있다. 버거씨 맥주도 내가 거들어줬다.
이날 우리의 마지막 종착 도시는 트라벤트라바크(Traben Trabach)였다.
이곳에서 맛난 저녁식사를 하자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구글 리뷰를 비교한 끝에 찾아낸 이곳-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와서 살짝 삐칠뻔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한입 먹자마자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버거씨는 치킨구이+샐러드를 시켰고 나는 크로켓+연어를 주문했다. 반씩 나눠먹었는데 가장 맛있었던 것은 바로 크로켓이었다. 겉바속촉 한국의 감자+애호박전...? 버거씨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맛이라며 감동했고 결국 나는 두덩이나 버거씨한테 양보했다. 다음에 내가 비슷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갈때는 열심히 모젤강변 따라 여유롭게 올라갔지만 오는길 버거씨는 아우토반을 원없이 달렸다.
나를 놀려주려고 버거씨가 갑자기 속도를 올렸을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롤러코스터의 악몽이 떠오르는 느낌...;;
무섭다고 난리 치다말고 다른 차가 더 빠르게 추월하는걸 본 나는 더 밟으라고 소리를 쳐서 버거씨가 빵터졌다ㅋㅋ
버거씨 덕분에 아주 다이나믹하고 알찬 주말을 보냈다. 사실 요즘 나의 매 주말은 이렇게 꽉찬 느낌이다. 따로 여행이 필요없을 만큼 일상이 여행이 되었다고나 할까.
감사합니다. 전부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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