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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룩셈부르크 포도밭 산책 데이트

by 요용 🌈 2024. 9. 8.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에너자이저 버거씨 만난 후 나는 주말마다 등산 혹은 산책을 즐기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 또 어디로 나를 데려갈까 궁리하고 있던 버거씨를 보며 나는 멀리가지말고 그냥 가까운데 산책이나 가볍게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버거씨는 딱 그런 장소가 있다며 반갑게 대답했다. 
 
차로 잠깐 달려서 도착한 곳은 룩셈부르크 어느 빈야드, 그러니까 드넓은 포도밭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포도밭.
보성 녹차밭은 저리가라할 스케일이다

 
"나는 머리를 식히거나 사색이 필요할 땐 여기로 와. 하염없이 계속 걸을 수가 있지." 
 
포도밭 사이로 여기저기 이어진 길을 보니 진짜 아무 생각없이 몇시간이고 계속 걸을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나는 가방에 챙겨온 복숭아며 살구를 하나씩 꺼내 먹으며 따라 걸었다. 구름낀 날씨가 산책하기에 딱 좋았다. 

 
과일을 와작와작 깨물어 먹으면서 포도밭 사이를 가벼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버거씨가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는것을 느꼈다.

 
"...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버거씨가 뜸을 들이더니 입을 무겁게 뗐다. 
 
"너는... 정말…" 

말을 못 잇길래 내가 대신 문장을 완성 시켜주었다. 

"완벽하다고?" 
 
나 혼자 대답하고 좋다고 깔깔 웃었더니 버거씨가 고개를 도리도리 한다. 
 
"아니야?" 
 
웃음을 뚝 그치고 빤히 쳐다봤더니 버거씨가 말했다. 

"너는 완벽 그 이상이야. 말로 설명이 안돼."
 
아하하… ㅡㅡ; 

완벽 그 이상. 그것이 나다. 

 
"피노누아 생각나지? 우리가 전에 Brand'Oliv에서 마신 와인이잖아. 브루고뉴에서 주로 생산하는 와인이야." 
 
포도나무마다 이렇게 품종이 써붙어있는것도 흥미로웠다. 농장주인의 이름이 곳곳에 붙어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거대한 빈야드는 여러 농장주들이 한데 모여있는것이었다. 

거대한 빈야드 사이에 작은 마을이 숨어있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로 내려가보자!

마을로 내려오니 예쁘고 호화로운 집들이 꽤 많이 보였다. 역시 룩셈부르크는 부촌이구낭. 어딜가나 볼거리가 참 많다.

호화로운 집들을 몇개 지나쳐서 마을 중앙으로 들어섰더니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중앙 광장(?)이 나타났다. 

운치있는 돌바닥을 홀린듯 구경하고 있을때 한무리의 어린이들이 키작은 자전거를 타고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모아옌" 
"모아옌" 
 
버거씨가 아이들에게 룩셈부르크어로 인사를 되받아주었다. 그후로 나는 동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모아옌"하고 인사를 건넸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언어로 낯선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것. 더없는 낭만이다. 
 
 

 

좁은 골목이 눈에 띌때마다 나는 버거씨를 끌고 그곳을 통과했다. 뭔가 옛날 건물과 돌바닥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빠를 모셔왔을때도 이곳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어. 너도 좋아할 줄 알았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버거씨는 흐뭇한가보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반대편 포도밭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때 한 노부부가 차에서 어린 망아지 두마리를 내리고 있었다. 망아지들을 방금 사서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너무 예쁘게 생긴 망아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들로 올라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따라 가볼까하고 망설이다가 말았다.

어딜보나 그림엽서같은 풍경이라 사진을 자꾸만 찍었다. 하지만 사진에는 그 아름다움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구나. 당시 느낌은 평화 그 자체였는데...

포도밭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더니 저 멀리 모젤강과 함께 룩셈부르크 시내가 보였다. (포도밭의 거대함을 한번 더 확인하기도 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서서 감격한 표정으로 발밑의 풍경을 감상했다. 버거씨도 덩달아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머리가 복잡할때 찾아오는 장소라더니, 정말 완벽한 곳이네... 
 
내가 한동안 꼼짝을 안하고 서 있었더니 버거씨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안해. 오히려 머리를 비우는거지. 대신 이 상쾌한 바람을 내 머릿속에 채우고 있어.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아." 
 
"아, 나도 따라해봐야겠다." 
 
"내 머리가 지금보다 열배 커진다고 상상해봐. 됐어? 그럼 이제는 내 머리가 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다고 상상해봐.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바람에 씻겨나가는게 느껴져?" 
 
정말 머리가 아주 맑아지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르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 내 기분을 버거씨는 고스란히 공감해주고 있어서 기분이 더 좋았다. 
 

 
정상을 찍은 후 우리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마을을 향해 돌아섰다. 
 
"우리 그때 그 언덕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 갈까?" 

"안돼, 나 이꼴로 5성급 호텔에 들어가고 싶지않아." 

"괜찮은데?"
 
난 안괜찮다고... 
 
"그럼 룩셈부르크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은 어때?" 
 
"아니. 난 아무데도 가고싶지 않아. 그냥 저녁에 집에서 피자먹자."
 
"하... 나는 왜 자꾸만 널 어딘가 좋은데로 데려가고 싶은걸까!" 

"내가 그 이유를 말해줄까?" 
 
버거씨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완벽 그 이상이니까." 

"하하 정답이네." 


나를 즐겁게 만드는것이 요즘 자신의 1급 관심사라고 강조하는 나의 키다리 아저씨. 

오늘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