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St Paul de Vence)에 오기전 우리는 이곳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점심식사를 미리 예약해 두었었다.
막상 와 보니 비수기라 많은 레스토랑이나 까페들이 문을 닫은 상태여서 미리 예약하고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페 티모떼 (Café Timothé)라는 이름이었는데 찾아가는데 꽤 애를 먹었다. 이 주변을 세 번이나 돌고 나서야 찾아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은 없고 비좁은 공간이 나타나서 살짝 당황했다. 여기 레스토랑 맞나요...;;

"저희... 12시 반에 예약했는데요...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기다릴까요?"
곱슬머리에 키가 크고 푸근한 체격과 인상을 가진 중년의 남자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봉쥬! 마침 한 테이블이 남아 있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 계시면 잠시 후 제가 올라가서 메뉴 안내를 도와드릴게요!" 라며 우리를 살갑게 맞아주셨다.

2층으로 올라가자 다락방같은 아늑한 공간에 테이블 4-5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와우, 여기 숨은 맛집인가봐~! 역시 구글 리뷰는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는 급했던 화장실에 먼저 다녀왔는데 잠시 후 내가 돌아왔을때 버거씨가 "사장님이 오셨다가 너를 찾았어." 라고 말했다.
으잉?
"잠시 후 다시 올거래."
과연 잠시 후 돌아온 사장님이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아! 마담님 돌아오셨네요!" 라고 말했다.
우리 외에도 방금 들어온 모녀 손님이 옆자리에 있었는데 우리 두 테이블에 메뉴 설명을 한 번에 하려고 나를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메뉴는 따로 없고 매번 이렇게 큰 목소리로 직접 설명을 해 주시는가 보다. 다락방 한가운데 풍채좋은 사장님이 마치 스탠딩 코메디언처럼 우뚝 서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든 손님들을 골고루 돌아보시며) 메뉴 설명을 시작하셨다.
"자! 우선 오늘의 음료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배에 당근과 비트뿌리 그리고 생강을 넣고 짜낸 주스예요. 마침 저쪽 테이블 마담님께서 드시고 계시답니다."
다락방 모든 손님들이(새로온 손님들뿐만 아니라 이미 주문을 마쳤거나 식사중인 손님들도 다) 그 마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동양인 마담이 살짝 당황해 하자 모두들 일제히 웃었다.
"마담, 음료의 맛이 어떠신가요?"
"훌륭합니다."
사장님은 과장되게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버거씨가 얼른 손을 들고 "저도 그거 한 잔 주세요!" 라고 주문했더니 사장님께서 버거씨를 2초간 조용히 응시하시며 "오늘 부스터가 필요하신가요, 무슈?" 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버거씨는 오늘 부스터는 필요없을 만큼 이미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청중들의 웃음소리에 뭍혀버렸다ㅋ
그 다음 사장님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서 오늘의 메뉴들을 설명했다. 파스타, 호박스프 그리고 샐러드 세가지였다. 아마 그날의 신선한 재료들에 따라 메뉴가 서너개씩 바뀌는 모양이다. 원맨쇼처럼 서서 웃음을 주고 소통하는것을 매우 즐기는 듯했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멋진 분이었다!
"호박스프는 저쪽 분이 드셨어요. 마담, 스프 맛이 어떠셨나요?"
이번에도 다들 웃었고 그 마담은 아주 맛있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 마지막으로 샐러드는 개인적로 별 세 개짜리 요리에요. 배 두 쪽에 염소치즈를 얹어서... 병아리 콩, 당근, 시금치 등... 이건 진짜 120유로는 받아야 되는데... 오늘 여러분은 정말 행운인거예요."
메뉴 설명이 끝날때까지 우리는 몇 번이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다락방같은 공간에서 서로 만난적 없는 (심지어 국적도 다른)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고 사장님의 말솜씨에 따라 웃다보니 공간이 더 아늑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에게 속삭였다.

오늘의 음료를 한 잔씩 받아 건배를 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비트, 당근, 배에 약간의 생강향이 느껴졌는데 재료간의 합이 너무 좋았다. 충전 완료! 아참 버거씨는 부스터 필요없다고 했지.

내가 주문한 파스타!
초록색 파스타위에 토마토 소스, 깨 그리고 치즈가 한 덩이 얹어져있다. 첨엔 계란인줄 알고 노른자 터지라고 나이프로 찔렀는데 내 의도를 눈치챈 버거씨가 웃었다ㅋ

노른자는 없고 치즈만...ㅋㅋ
아주아주 맛있었다!

버거씨는 사장님이 자신있게 추천한 배 샐러드를 주문했다. 버거씨가 잘라줘서 한 입 먹어봤는데... 염소치즈의 강한 향이랑 과일향의 조합은 영 나랑 안맞는다... 으엑...

"염소치즈는 빵이랑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만 한데, 과일이랑 섞이니 향이 너무 강해... 이거 너무 조합이 이상한데?"
내 말에 버거씨는 갸우뚱하며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염소치즈랑 배의 조합은 잘 알려진 좋은 조합인데...?"
역시 나라별로 입맛이 다르구나... 아무튼 나는 사양...
버거씨는 정말 맛있다며 사장님의 자신감이 이해간다고 말했다.
음료나 음식들이 전체적으로 신선하고 건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파스타가 조금 더 짰으면 좋겠다... 소금이 어딨나...

Ail des ours? 곰의 마늘?
내가 소금병을 들고 갸우뚱했더니 버거씨가 설명해 주었다.
"그건 진짜 마늘은 아니고 야생식물이야. 그 식물이 첨가된 소금이지."
버거씨는 곰의 마늘이라는 식물의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줬는데 그건 다름아닌 명이나물이었다! 이게 프랑스어로는 곰의 마늘이구나.
나는 이 소금을 파스타에 뿌려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단군신화를 들려주었다. 의식의 흐름대로ㅋㅋ 버거씨는 매우 흥미롭게 경청해 주었다.
사장님께서 옆테이블 커플에게 음식을 서빙하면서 한마디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울랄라 보통 파스타는 남자 손님이 주문하고 샐러드는 여자 손님이 주문하시던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두 커플이나 반대로 주문하시네요."
첫번째 커플이 우리인가보다. 다들 우리를 바라보는것을 보니ㅋ 네! 저는 샐러드보다 파스타가 좋아요~
우리가 식사를 마쳤을때 사장님은 빈그릇을 치워주신 후 디저트 메뉴를 또 한차례 큰 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오늘의 디저트는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비트뿌리를 넣고 만든 초코갸또, 그리고 또 하나는 사과 갸또.
우리는 한가지씩 주문해서 나눠먹기로 했다.

버거씨가 열심히 반반씩 나눴다.
초코갸또에서 정말로 비트의 향이 나네.
나도 한때 버터 대신 쥬키니를 넣고 초코갸또를 굽곤 했고 사과 갸또는 이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게 만들수 있다고 버거씨에게 자랑을 했다. 언젠가는 그거 내가 다 만들어 줄게.

디저트는 배불러서 도저히 다 못먹겠다. 결국 반절을 남겼고 버거씨가 기꺼이 다 해치워주었다.

사장님은 놀랍게도 혼자서 요리하고 서빙하고 메뉴 소개까지 도맡고 계셨다. 2층까지 계단을 쉴새없이 오르내리며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버거씨랑 나는 정말 대만족을 했다. 그저 맛있는 음식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아늑하고 친밀한 분위기, 지루할 틈없이 웃게 해 주시는 유쾌한 사장님,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등 모두 총체적으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슨일을 하건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은 못이긴다고 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사장님 너무 멋진 분이셨다. 오래오래 그 웃음 변치않으셨으면 좋겠다.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어 merci beaucoup!
생폴드방스 가시면 Café Timothé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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