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를 떠나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버거씨는 습관처럼 책을 꺼내들었다. 멀미때문에 책을 읽을 엄두는 내 본 적이 없는 나는 대신에 이어폰으로 오디오북을 들었다.
얼마 안가, 아니나 다를까, 버거씨는 졸다가 책을 요란하게 떨어트렸다. 사실 나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비디오를 찍고 있었는데ㅋㅋ 책을 못잡아줘서 미안해... 웃느라 그랬어. 버거씨는 오히려 나한테 미안하단다. 나를 챙피하게 해서 미안하다는건가...?
니스로 바로 돌아가자니 시간이 꽤 많이 남는다.
기차역이 있는 깐뉴쉬르메르(Cagne-sur-mer) 구글맵 사진을 보니 꽤 볼거리가 있어보였다.
결국 우리는 깐뉴쉬르메르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버거씨는 버스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부터 기운이 만땅 충전되었는지 의욕이 다시 넘쳐났다.
"우리 저기 미용실 들어가서 너 머리하자!"
"왜? 내 머리가 마음에 안들어?"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재미로~ 예쁘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잘라도 되고 파마를 하든가 염색을 하든가 아무거나 하고싶은대로~ 어때?"
프랑스 미용실 비싼데..... 그리고 내가 귀찮아...
잠시 후 사진을 출력하는 가게를 보자마자 또 들어가는 버거씨.
여전히 내 독사진을 크게 뽑아서 거실에 걸겠다는 의지가 꺽이지 않았다.
재질이나 크기등 꽤 진지하게 네고를 한 끝에 다행히도 사장님께서는 "여행중이시라면 액자가 커서 비행기로 운반해 가지는 못하실거예요. 대신에 명함을 드릴테니 온라인으로 출력만 의뢰하실 수도 있답니다." 라고 제안을 해 주셨다. 휴...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미용실과 인쇄소를 아무일 없이 무사히 지나친 후 언덕에 있는 성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다.
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 가파른 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것인가...ㅎㅎ 딱히 목적지가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길이 있으니까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끝까지 올라가면 멋진 경치가 있을것 같았다.
사실 이 골목 자체도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
한참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건물들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드디어 언덕끝에 있는 성이 나타났다.
성에 올라가 보았지만 문이 잠겨서 딱히 구경할 거는 없었다.
살짝 허탈해지려던 찰라, 성의 반대편으로 통하는 터널을 발견했다.
터널을 통과하니 내가 막연히 기대했던 뻥 뚫린 경치가 펼쳐졌다.
이곳에서도 저 멀리 산너머 알프스 설산이 보인다. 으메 시원한거...
정말 멋지구나...!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경치를 매일 보고 살겠네.
힘겹게 올라왔으니 그냥 가기보단 어디 좀 앉아서 뭐라도 마시자..
성 아래에 레스토랑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시간이 좀 애매했던지라 손님은 우리 뿐이었다.
버거씨는 커피를 주문했고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블랙티가 너무 진해서 뜨거운 물에 한번 우려낸 후 우유에는 연하게 타서 마셨다. 한 잔을 시켰는데 두 잔을 제조했네ㅋ
진하게 우려진 블랙티는 버거씨더러 마시게 했는데 덕분에(?) 버거씨는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면서 바라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영상으로 남겨보았다.
버거씨, 우리 다시 역으로 내려가자. 기차타고 우리 숙소가 있는 니스로 이제 돌아가야지.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거기다 저 멀리 바다가 펼쳐진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아무런 계획없이 무작정 올라간 가파른 언덕.
그 언덕위에 있던 성과 멋진 경치 그리고 뜨거운 차 한 잔.
생각보다 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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