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 새출발

겨울, 봄, 여름을 동시에 느낀 보쥬 등산

by 요용 🌈 2025. 3. 25.

이전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겨울에도 못 본 눈을 이제서야 밟아보다니

 

처음에는 아주 신이 났었다.

겨울내내 제대로 본 적 없었던 흰 눈을 3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맘껏 밟아보게 생겼다면서 말이다.  

 

일주일 전에 내린 눈이라는데 겉은 녹아서 딱딱해져있고 군데군데 발이 제법 깊이 빠져서 걷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하...

눈위를 걷고는 있지만 기온은 또 온화해서 그새 땀이 났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아이고야

나는 도저히 못가겠다.

 

결국 바닥에 뻗어버렸다. 

눈이 없는 마른 풀위에 대자로 누웠더니 버거씨가 웃으며 말했다. 

 

"쉬고싶은 만큼 쉬어."

 

누워서 하늘과 아래 풍경을 바라보니 숨이 뻥 뚫린다. 

 

"이리와서 같이 누워봐." 

 

내 말에 버거씨가 옆에 나란히 눕더니 끝내주는 경치에 살짝 신음했다. 파란하늘 흰구름 들판 흰눈 저 멀리 듬성듬성 집들...

 

"정말 잠깐 도시를 벗어났을 뿐인데 진짜 휴가를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어. 우리 앞으로도 틈 날때마다 부지런히 다니자. 너랑 가고 싶은 곳들이 정말 많아." 

 

한참 이어지는 버거씨의 독백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반팔티를 가져올걸 그랬어... 덥다. 

 

내가 중얼거렸더니 버거씨가 가방에서 자기 반팔을 꺼내줬다. 그거라도 입으란다. 

음... 아재스타일이지만... 더우니까 그냥 입어야지. 

 

그래도 반팔을 입으니까 좀 살겠다. 

 

얇은 패팅은 벗어서 허리에 묶었다.

알았다고요... 가고 있다고요... 

 

롱다리 버거씨는 또 저만치 앞서 간다. 

아! 바로 여기가 숙소 사장님이 말씀하신 경치 명당인가보다. 

우와... 

저 아래에는 호수가 있다고 했지.... 두근두근... 

짜잔! 

실제로 봤을땐 정말 웅장했는데 사진으로는 역시 느낌이 안사네. 

자세히보면 저 아래에 아주 먼지만큼 작은 크기의 사람들이 움직이는게 보인다. 

우리도 잠시후에는 저기로 내려갈거라고 한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멀어보인다. 

 

버거씨는 옆에 있던 또다른 등산객 아저씨랑 대화를 시작했다.  

아저씨는 보쥬 서쪽에 있는 동네에 사시는데 차로 30분거리라서 주말에 혼자서 자주 오신다고 한다. 

 

"저희는 낭시에서 왔거든요. 거기도 그리 멀지는 않아요. 주말에 짧게라도 이렇게 외출을 하면 큰 충전이 되지요. 길게 휴가가는거랑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예요. 조금만 찾아보면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멋진 곳들이 얼마든지 많더라구요. 왜 진작에 몰랐을까요." 

 

처음에는 아저씨도 말을 많이 하셨는데 버거씨가 방언 터지듯 혼자 막 떠들기 시작하니까 아저씨는 점점 말수가 사라지고 있었다. (속으로는 처음만난 이 중년 남자의 감수성에 놀래셨을지도...)

그래도 하고싶은 말을 꿋꿋하게 다하는 버거씨. 

나는 덕분에 조금 떨어져서 혼자 고요를 즐길 수 있었다. 

 

가방에서 귤이랑 바나나를 꺼냈다. 

어라? 한개씩 밖에 안남았네. 어제 분명 많이 가져왔는데... 차안에서 내가 다 먹었구나ㅋ 

나는 착하니까 귤 반개, 바나나 반개를 남겨놓았다. 잠시 후 아저씨랑 수다를 떨고 돌아온 버거씨가 고마워했다. (아저씨가 버거씨 수다에 놀라 서둘러 떠나신 느낌이 들기도...)

 

목마를 테니까 물도 좀 마셔... 

그만큼 떠들고 나면 누구나 목이 마를거거든. 

 

 

버거씨 셔츠를 입어서 그런가...  좀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기운이 뒤늦게 솟아나네. 아재파워! 

 

자, 이제 다음 행선지로 떠나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