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어 수업이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씩 잡혀있었다.
큰아들 방에다 내 임시 서재를 차려놓고 편하게 쓰는 중이다.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버거씨는 종종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나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수업하는게 마음 편하다;

젊은 사람 못지않은(?) 혈기를 뿜뿜하며 떠나는 버거씨에게 내가 딱 한 시간만 타고 오라고 소리쳤다. 가끔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한참만에 (볼이 쾡해서ㅋㅋ)돌아오기도 하므로 꼭 상기시켜줘야 한다.

버거씨는 다행히 한시간만에 돌아왔고 테라스에다 정성스레 점심까지 차렸다.

차려놓은건 딱 봐도 술상인데 내가 미안하지만 알콜은 요즘 부담된다. 버거씨는 와인병을 들고오다말고 시드르로 바꾸어왔다. 시드르는 알콜이 고작 2%정도 밖에 안돼서 얼마든지 마실수 있지.

요즘 우리가 꽂힌 참치피자 되시겠다!

오후에 수업이 하나 있어서 치우는것도 못 도와주고 다시 윗층으로 올라갔다.
"나 수업끝나면 우리 산책가자. 들판도 좋고 숲도 좋아. 딱 한시간정도면 좋겠어." 라고 말했더니 버거씨가 딱 맞는 코스를 검색해 두겠다고 했다.
수업을 끝낸 후 우리는 버거씨가 미리 정해 둔 코스로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 그 자체!!

"아까 거실에 있다가 너 수업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
으잉 챙피하게... 일부러 방문도 닫고 했는데 다 들렸구나;; 알고 싶지 않았는데 ㅡㅡ;
"선명하진 않았으니까 걱정마. 그냥 네 목소리랑 학생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 근데 기분이 묘했어. 좋은 의미로 말이야. 네가 우리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자체가 나를 기쁘게 만들더라."
그게 기쁠일인가...?
곰곰히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다가 버거씨의 애정이 이만큼 크구나 싶어 마음이 벅차다. 내가 별거 안하고 옆에만 있어도, 버거씨가 차려주는 밥만 잘 먹어도 버거씨는 행복하구나.
"대신 다음주부터는 나 진짜 일에만 집중할거야. 주말에 수업이 더 많아서 3주정도만 시간을 줘."
"알았어. 걱정마. 네 일이 더 중요하고 일에 우선적으로 전념하겠다는 너의 의견을 나역시 존중하고 지지해. 그러니까 걱정 마. 나는 괜찮아."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나중에 일에 익숙해 지면 그땐 더 자주 와서 여기서 수업하면서 오래 머물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이해해줘."
"그래 나도 알아. 당장에 몇 주 못만나는건 참을수 있어. 그동안 나는 가족들,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면 돼."
그래 그래~

추수를 끝낸 들판은 여름옷을 완전히 벗었다.
앙상하고 기괴한 저 나무는 또 어떻고.

오늘의 산책코스는 완벽했다. 들판과 숲이 50:50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딱 좋은 코스! 딱 한시간이 걸린것도 마음에 들고.
집에 돌아와서 버거씨가 만들어준 냉 라떼를 마시며 버거씨에게 한국어 수업을 해 줬다.
이제는 받침도 제법 잘 읽는다. 나랑 수업하는 14살 짜리 소년의 한글 실력이 날로 는다고 했더니 살짝 자극을 받은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알차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버거씨 말대로 둘이 같이 있으니 평범한 하루도 다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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