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네 집에 가는 일요일 아침.
주말에 추가 한국어 수업이 들어오지 않게 일주일 전부터 스케줄을 막아놨지만 그 전에 예약된 수업이 늦은 오후에 하나 잡혀 있어서 일찍 돌아올 수 있도록 아침 10시에 출발했다.
에리카와 마이크는 몽플리에 휴가를 가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지만 선약이 갑자기 취소된 엘라가 우리와 합류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벼룩시장때문에 동네에 사람들로 터져나가는 중이야. 주차할 데 없으니까 오는 길에 XX중학교 근처에 주차하고 걸어와야 될 거야."
알마가 미리 당부한 대로 우리는 차를 멀찌기 주차해 놓고 10분정도 걸어왔다.
벼룩시장이 그렇게나 큰 행사라고...?
근데 알마네 집 근처에 왔을때 붐비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알마네 동네가 이렇게 시끄러운 모습은 또 처음 보네. 동네 주민들이 벼룩시장에 다들 진심인 모양이다.
골목마다 벼룩시장 부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알마네 집으로 가자-
불과 한 달여만에 다시 만났는데 만삭이 된 알마의 모습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얼굴도 손도 발도 모두 퉁퉁 부어있었다 ㅠ.ㅠ
아.. 엄마가 되는건 희생이구나...
애써 웃고는 있지만 요즘 친구의 밤과 낮이 매우 괴롭겠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느껴졌다.
"시원한거 뭐 좀 줄까? 아니면 지금 나가서 벼룩시장 구경하자."
그럴까?
다같이 밖으로 우르르 나가려던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빨래 바구니. 쪼글쪼글한 아기 옷들이 가득했다.
혹시나 싶어 만져보니 젖어 있네.
"이거 세탁기에서 방금 나온거구나? 날씨 좋은데 내가 후딱 널어줄게!"
괜찮다고 말리는 알마의 말을 뒤로한 채 나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성큼성큼 정원으로 나갔다.
버거씨, 엘라도 팔 걷고 나서서 같이 널었다.
애기옷이 너무 귀여워서 빨래 너는것도 재미있네.
"이거 전부다 스테판 전부인이 준거다? 딸들이 입던건데 손주 생기면 주려고 간직했던거래. 상태가 정말 좋지? 3개월 이후부터는 옷 살 일 없을것 같아."
휴... 애기가 금방 크니까 3개월 사이즈로 살까 하다가 배넷으로 두 벌 사오길 잘했다. (알마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해서 너무 기분 좋았다.)
"전부인은 과연 전남편의 늦둥이 딸을 위해 옷을 갖다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ㅋㅋ"
내 말에 다들 웃다가 알마가 한마디 보탰다.
"그것보다 더 웃긴건 뭔 줄 알아? ㅋㅋㅋ 스테판 동료들도 애기용품 정말 많이 갖다줬거든? 다들 ㅋㅋㅋ 손주들이 쓰던거라고 웃으면서 주더라 ㅋㅋㅋ"
우리는 그 말에 다 쓰러졌다.
알마는 나보다 두 살이 많고 알마의 남편인 스테판은 50대 후반이다.
늦둥이 소식은 이 부부 뿐만 아니라 주변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기분좋은 바람을 가져온 듯하다.
수다를 떨다보니 빨래 널기가 금방 끝났다.
"정말 고마워. 난 혼자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여러명이 같이 하니까 금방 하는구나."
"그럼 그럼! 다른거 할 거 있음 또 말해줘. 이럴때 실컷 부려먹는거야."
내 말에 엘라랑 버거씨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퉁퉁부어서 캔도 못따면서 뭘 하겠다고... ㅠ.ㅠ
손이 너무 딱딱하게 부어서 잘 땐 얼음 팩을 쥐고 잔다고 한다. 얼얼하게 마비시키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이다.
밖으로 나갔더니 지나는 동네 사람들이 알마 부부에게 어찌나 살갑고 친절하던지!
모두들 알마의 출산일에 대해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었다. 시골의 정겨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이랄까.
알마는 스테판이 부재중일때 혹시라도 급하게 응급실을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냥 이웃집으로 달려갈 거라고 했다. 미리 부탁해 놓진 않았지만 누구하나 외면하지 않고 차로 병원까지 데리고가 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물론 본인도 이웃을 위해 똑같이 해 줄테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거겠지.
한편으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희생이라는 생각도 떨쳐버릴수가 없는 하루였다.
한 달만 참자...
아니네. 한 달이 지나면 그때가 진정한 시작이구나.
흠...
노산이 쉽지 않구나.
그래도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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