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마다 나를 웃겨주는 또다른 남자

토요일 아침마다 나는 14살 홍콩 소년과 한국어 수업을 한다. 
 
 
"남학교에 다닌다고? 저런 안됐네."
 
내 말에 소년이 작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안되긴요!? 완전 더 좋거든요! 여자들은 이상해요. 진짜 같이 있기 힘들어요." 
 
"예를 들어?"
 
"예를들면... 안 쳐다봤는데도 자꾸 자기 왜 쳐다보냐면서 화내요. 저는 진짜 아무 생각없이 눈만 뜨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막 혼자 화내는데 저는 답답해서 그냥 대꾸도 안했어요. 남자 학교라 진짜 다행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땜에 내가 토요일마다 웃는다. 
 

지난주에 한국어로 가족을 소개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오늘 하는 말이, 웨슬리라는 이름의 베프에게 자신을 '아빠'라 부르라고 시켰더니 의미도 모르고 자기를 아빠라 부른다고 한다. 아들이 생겼다면서 좋다고 웃는다.
 
사실 나는 소년이 하는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는다ㅋㅋ 다 대꾸해 주면 끝이 없어서 대충 무시한다. 아니지, 내 나름의 방식으로 대꾸를 해 준다고 하는게 맞겠다. 
 
"웨 슬 리 는  홍 콩  사 람 이 에 요?"
 
나는 베프의 이름을 넣어서 한국어로 천천히 소년에게 질문했다. 
소년은 히죽히죽 웃더니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웨슬리는... 홍콩... 사람이.... 아니에요........ 개 예 요. 개! 하하하" 
 
역시나 14살 남자아이다운 대답이다.
 
나는 친절하게 문장을 고쳐주었다.
 
"‘웨슬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개예요.’ 라고 해야지. 자, 여기 내가 쓴거 다시 읽어봐." 
 
소년이 읽더니만 웃기다고 좋아 죽는다.
 
"내가 말한게 아니야. 네가 한 말을 좀 더 자연스럽게 고쳐줬을 뿐이야. 비록 웨슬리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난 네가 이렇게 배운 한국어 단어로 퍼즐 놀이 하듯 노는게 마음에 들어. 아주 자랑스러워."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소년에게 내가 말했다. 
 
"아니 내 말은, 네가 아니라 내가 자랑스럽다고. 너 잘하는 것 좀 봐. 이거는 내가 만든거지ㅋㅋㅋ"  
 
소년이 깔깔 웃다가 뒤로 넘어갔다. 
 
거의 매 수업마다 소년의 어머니는 옆에 같이 있다. 
수업에 전혀 방해 되지 않게 조용히 계시다가 가끔 한국말로 조용히 대답하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곤 한다ㅋㅋㅋ 아무래도 수업을 옆에서 같이 듣고 계신것 같다. 하지만 소년이 잡소리를 해도 혼내거나 단도리하지 않으셔서 오히려 쿨해보인다. 
 
"좋아하는 한국 배우 있어?" 
 
내가 이 질문을 했을 때 소년은 갑자기 마이크를 끄고는 옆에 계신 어머니와 꽤 길게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핸드폰으로 이미지를 검색해 준 걸 고대로 받아들고 나한테 보여주는 소년. 
이광규. 김종국. 유재석이다. 이 집 식구들은 러닝맨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한국말로 문장을 만들어서 읽게 했다.  
 
"김종국은 배우가 아니에요 가수예요...  아 진짜요? 진짜 가수라고요? 처음 알았어요!" 
 
또다시 마이크를 끄고는 옆에 엄마랑 열심히 떠들고 있다. 엄마도 하실 말씀이 많은가보다ㅋㅋ  
 
 
이 소년은 내가 한국어 수업을 처음 시작했을때 가장 먼저 내 수업을 구매해 주었다. 나의 첫 학생인데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소년이 점점 흥미를 느끼고 한국말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꽤 큰 성취감을 느낀다. 나만큼 내 수업을 즐기는 소년이 귀엽고 고맙고… 내년 1월까지 같은 가격으로 수업이 연장돼 있는데 이미 소년의 수업료는 내 학생중에 가장 저렴한 상태다. 한동안은 인상없이 그냥 유지할 계획이다.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꽤 한국어가 느셨을것 같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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