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는 요즘 요리를 즐기고 있다.
어제는 김밥을 쌌다.
시금치도 데쳐서 무치고, 아빠가 작년 주말농장에서 잔뜩 얻어오신 무로 단무지도 직접 만들었다.
내 김밥을 좋아하는 조카들을 위해 언니네도 좀 갖다주고 근처 계시는 할머니께도 한통 갖다 드리기 위해 잔뜩 쌌다.
김밥 사진을 좀 찍어두는건데...
우리 외할머니는 큰삼촌 작은삼촌네서 차례로 사시며 사촌동생들을 모두 키워내신 후 혼자살고 싶으시다고 선언하신 후 부터 줄곧 우리동네에서 살고 계시다. 이곳은 할머니께서 오래전에 사시던 동네라 친구분들이 많아서 매일 노인정에 다니는 낙으로 사시는데 요즘은 코로나때문에 노인정도 닫고 외출도 못해서 매우 답답해 하시는 중이시다.
미리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김밥한통을 들고 찾아갔더니 할머니가 너무너무너무 반가워하셨다.
잠깐 수다좀 떨고나서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께서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찔러 넣으시고는 내 주머니 지퍼를 잽싸게 닫으셨다. 분명 돈이라는건 알겠는데 내가 주머니에 손도 못대게 하시며 내 등을 현관으로 떠미셨다.
나 돈 많다고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할머니는 소용이 없으시다.
"니가 맨날 나한테 해주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
어쩔수 없이 그대로 받아서 왔는데, 집에와서 꺼내보니 무려 20만원이다.. ㅠ.ㅠ 솔직히 5만원인줄 알았음.. 그것도 큰돈인데...
바로 전화를 드려서 무슨돈을 이렇게나 많이 주셨냐고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역정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비행기에서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주는 돈이야!"
"할머니, 비행기는 음식 다 공짜야~ 무슨 김밥 한통에 20만원이 어딨어~ 내가 김밥 팔러 갔나~??!!"
"그럼 자서방한테 맛있는거 사줘!"
예전에도 한국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다큰 외손녀에게 2만원, 3만원씩 꼬깃한 쌈짓돈을 찔러 주곤하셨다. 비행기에서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ㅠ.ㅠ
얼마전에는 저녁잠이 많으신 할머니께서 저녁 8시가 다돼서 집에 오셔서는 내가 보고싶어서 오신거라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내가 곧 떠난 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너무 보고싶어 지셨다고 했다. 찡... ㅠ.ㅠ 오시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귤도 한박스 주문을 하고 오셨단다... 이 손녀가 좋아한다고 말이다..
자서방에게도 말해 주었다.
할머니가 이거 자서방 맛있는거 사주라셨으니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그랬더니 자서방이 말했다.
"넌 그걸 받는게 아니었어. 우리보다 할머니한테 더 필요한 돈이잖아.."
"어쩔수 없었어. 이걸로 내가 할머니한테 맛있는거 더 자주 사드리고 요리도 해 드릴거야"
"와이프, 나대신 할머니를 꼭 안아드려줘. 그리고 내년에 같이 한국에 가자. 나 정말 한국 가족들 모두 보고싶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사는 이야기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춰진 프랑스 입국 (불안한 비자, 항공권..) (10) | 2020.03.22 |
---|---|
어릴적 납치전도 당했던 경험 (feat.애향단) (14) | 2020.03.19 |
코로나로 갑자기 캔슬된 항공... (10) | 2020.03.17 |
할머니 생신선물 (10) | 2020.03.13 |
프랑스 배우자 비자 드디어 신청 완료 (4) | 2020.03.07 |
중일 친구들 앞에선 왜 방어적이 되는걸까 ㅎㅎ (2) | 2020.03.05 |
프랑스로부터 서류가 늦게 도착한 이유 (2) | 2020.03.04 |
내 면허증이 살아있다고?!! (6) | 2020.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