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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어릴적 납치전도 당했던 경험 (feat.애향단)

by 낭시댁 2020. 3. 19.

뉴스 기사를 보다가 교회의 납치전도 관련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댓글에는 설마 저런일이 있나 신천지겠지 하는 등등의 믿을 수 없다는 댓글들이 있길래 내가 어릴적 당했던(?) 경험을 포스팅 해야지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기에는 애향단 활동이라는 게 있었다. 

일요일 이른아침마다 동네 모든 국민학생들이 각자 빗자루를 들고 놀이터에 모여서 6학년 오빠가 출석체크를 한 후에 흩어져서 동네 이곳저곳을 청소한다. 내복만 입고 나오는 애들도 있고 머리는 까치집에 당연히 세수를 하고 나오는 애들은 없었던것 같다ㅋㅋㅋ 끝나고 집에 가서 만화를 보거나 다시 자거나.. 출석체크가 무서워서 결석하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순진하게도 선생님이 동네마다 돌면서 검사를 한다고 했던걸 모두 믿었으니까 ㅎㅎㅎ 

아무튼 그때가 내가 3학년이었던가...? 
어렸고 오래된 경험이지만 지금도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감정까지 말이다. 

그날도 우리는 하나같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보람찬 애향단 활동을 마치고서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각자 집으로 돌아 가려던 참이었다. 

차도 많이 안다니던 시골동네였는데 봉고차 한대가 오더니 아줌마 한분이 내려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엄마는 항상 낯선사람을 조심해야 하고 특히 봉고차(?)를 조심하라고 강조해 왔으므로 나는 단호하게 무시했다. 

다른 언니오빠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였고, 동갑친구 한명과 내복차림으로 나왔던 한살 더 어린 남자애가 이미 그 봉고차에 올라타고 있었음.. 

헐... 

말려야 하나... 걱정돼서 멀찌감치 서서 멀뚱멀뚱 쳐다 보고 있으려니 그 아줌마가 천사같은 목소리로 과자를 줄테니 가자고 했다.

따라가면 과자준다고... 과자만 받고 오면 된다고... 요 근처에 가서 과자만 받고 바로 돌아오면 된다고... 

내친구까지 합세해서 나를 유혹했다. 

가자가자 같이 가자.. 과자만 받고 오면 되잖아... 

당연히 댓가가 있을거라고는 막연히 느꼈지만 나만빼고 쟤네 둘만 과자를 얻어올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느새 나도 차에 오르고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타려니까 아줌마가 그건 내려놓고 가자고 했다. 하긴 내 싸리빗자루는 너무 크긴했음... 

멀리 가는거 아니지요? 과자 정말 주는거지요? 과자만 받고 오면 되는거지요? 따위를 묻는동안 차는 계속 계속 갔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내애향단 동료들의 얼굴은 평안하기만 하더라.. 근데 대체 어디까지 가는것이냐... ㅠ.ㅠ 

봉고차는 생긴지 얼마 안되는 중앙교회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 이 교회 기억난다... 학교에서 누가 이 교회는 이단이라서 시끄럽게 드럼치는데라고 말하는 걸 들은적이 있다. 이단이 뭔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그 아줌마는 우리를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고 떠밀었다. 안들어가고싶었는데..
들어가기엔 우리는 몰골이 그지 같았는데... 
당당한 표정의 내복입은 동생은 가장 꾀죄죄했고 나나 내 친구도 형편은 비슷했다. 얼굴도 머리도 신발도 옷도 뭐 하나 안부끄러운게 없었음.. 

등떠밀려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교회안에는 사람들이 양옆으로 가득 앉아있었고 우리를 향해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어떤 아저씨가 잃어버린 강아지라도 찾은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양 팔을 벌리고 서 있었음.. 

교회라는곳을 생전 처음 가 봤고 맨 앞에 있던 아저씨가 목사님인줄도 모를 정도로 나는 교회에 대해 무지했던 상태라 모든것들이 충격적이었다. 그 뜨거운 환영속에 우리 거지삼형제는 덜덜 떨면서 우리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그 아저씨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아줌마가 시키는대로 말이다...

아...저기서 과자를 주는가보다... 

그 아저씨는 앞에다 우리를 세워놓고 한명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잘왔다고 하시더니 사람들에게 말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어 이 어린양들이 이곳으로 직접 찾아왔습니다!!"

또다시 뜨거운 박수 

박수가 잦아들자 그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성령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니? 성령께서 너희를 이곳으로 부르신 거란다." 

"아닌데요. 과자준다그래서 온건데요!" 

 

사람들은 웃었고 그 고집센 아저씨는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자를 위해 가야지 하는 마음조차도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거란다" 

그리고는 내가 다른말을 더 못하게 혼자 계속 떠들었음.. 다 알수없는 말들.. 그리고 우리 거지삼형제는 앞에 나란히 서서 사람들의 감격스러운 시선을 계속 받아야만 했음...  

한참을 떠들던 아저씨는 우리에게 연필을 하나씩(!!) 나눠주고는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과자는 다 끝나고 주나보다.. 

하긴 여기에도 어린애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들 보는앞에서 우리한테만 과자를 줄 순 없겠지... 

아줌마가 시키는대로 우리는 빈자리에 들어가서 예배가 끝날때까지 앉아있었다. 

근데 예배가 끝나고나서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우리 셋은 20분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으로 왔을때 식구들은 내가 어디서 놀다왔다보다 싶었던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나도 교회에 다녀온 건 별로 대수롭지않은 사건이라 생각돼서 부모님께 별말을 하지 않았다. (요즘같았음 난리 났겠지만-)

그 다음날 학교에 갔을때 중앙교회에 다니는 애들이 나에게 급 호감을 보이며 잘해주기 시작했다. 신영이는 일주일 내내 반애들한테 내가 자기네 교회에 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음.. 

그리고나서 그 다음주에는 신영이가 사람들한테 내가 자기네 교회에서 연필만 받아먹고 다시는 안나온다고 욕을 하고 다녔음.. 

6학년에 돼서야 오해가 풀렸다. 신영이랑 다시 같은반이 됐을때 그 얘기를 또 하길래 다른 애들이 다 듣는데서 들려주었다. 과자 준대서 따라갔다가 연필한자루만 받고 집까지 걸어왔던 아주 슬픈이야기를 말이다.. 몇년만에 사과를 받았음..  

그때부터 성령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각인이 돼버렸음ㅎㅎ 어린 양들을 과자로 꼬시는게 성령인가보다 싶었지... 

아무튼 나는 한번도 그 경험에 납치라는 표현을 쓸 생각을 못해봤는데 오늘 기사를 보니 이거슨 납치였구만...

그날 우리엄마가 이걸 들었더라면 놀래자빠졌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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