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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프랑스인 남편이 내준 와인 테스트에 실패했다.

by 낭시댁 2020. 6. 27.

점심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온 집안에 크게 울려퍼졌다.

"아 따블르!"

나는 샐러드가 담긴 그릇을 들고 테이블로 갔고, 곧 자서방이 지하실에서 새 와인 (샹떼밀리옹 꾸스뽀드)을 꺼내와서는 합류했다.

자서방은 작은 잔 두개에 와인을 각각 따르더니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 두개다 맛보고 나서 어떤걸로 마실지 선택해."

"똑같은 와인이잖아."

자서방은 별 대답없이 어서 맛보고 결정하라는 듯 눈썹을 움직이며 나를 재촉했다.



사실 나는 2번이 더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1번 와인이 미지근한 느낌이 들어서 의심이 들었다. 아마 자서방이 똑같은 와인을 따른 후에 1번 잔을 많이 돌려서 나더러 차이점이 느껴지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1번 잔을 선택하며 말했다.

"나 이거 마실래."

자서방은 한숨을 푹 쉬었고 오븐에서 닭을 뒤늦게 꺼내서 합류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의 표정을 보시고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진짜 그걸 골랐어?"




내가 잘못 골랐나보다.

알고보니 자서방은, 나 몰래 첫번째 잔에는 어제 먹다 남은 미지근한 와인을 따른것이었다. 보르도와인이라고 써져있기는 했으나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petit soleil (쁘띠쏠레이)"라는 이름만 있는 와인이었다.ㅋㅋ 포도가 해를 많이 봐야 맛있는데 해를 조금만 쬐서 맛이 없나보다 ㅋ

그래도 저렇게나 속상해 하다니...



내가 고른 와인을 그대로 마시겠다고 했지만 자서방은 속상한 표정으로 "아니야, 내 와이프가 맛없는 와인을 마시게 할 순 없어." 하며 들고 나가 싱크대에 버리고 왔다. 그리고는 큰 와인잔을 꺼내와서 꾸스뽀드와인을 새로 따라서 건네주었다.

오늘 점심메뉴는 오븐 닭구이와 야채 오븐 구이 (이거 진짜 맛있다. 이태리식이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그리고 감자구이를 먹었다. 맛있는 와인도 곁들이니 이보다 더 훌륭한 식사는 없을 맛이었다.



내가 실패한 블라인드테스트가 못내 아쉬웠던지 자서방은 나몰래 두번째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닭뼈를 바르는데 열중하고 있어서 미처 못 본 줄 알겠지만 좀전에 싱크대에 와인을 버리고 온 빈잔에 쁘띠쏠레이 와인을 다시 따르는걸 나는 봐버렸다. 괜히 상체를 돌려서 의심스럽게 따르니까 안볼것도 보게 되잖니. 물론 나는 못본척 했다.




"자 이번에는 이 큰잔이랑 작은 잔의 와인 맛을 비교해 보고 어떤게 더 맛있는지 알려줘. 참고로 둘다 같은 와인이야."

"에이, 별 차이 있겠어?"

능청스럽게 대답한 후 큰잔을 먼저 맛 본 후, 두번째 작은 잔의 와인을 맛 보았다. 그런 직후 나는 어이없다는 듯 작은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어제 그 와인이네. 날 뭘로 보고.. 샹떼밀리옹이랑 비교하면 안되지."

자서방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치? 맛이 확 다르지? 생각해보니까 아까는 내가 잘못한거야. 와인을 새로 따자마자 바로 따라서 와이프가 헷갈렸던거지. 와인은 오픈 하고 잠시 뒀다가 마시는게 좋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내 와이프가 그 맛없는 와인을 골랐을 리가 없지."

이게 그렇게도 좋은일인지 닭고기를 씹다말고 뽀뽀까지 상으로 주는 자서방

그래그래.. 이제 블라인드 테스트 하지말자...



오늘 닭고기는 유난히 맛있었다. 며칠전 모노프리에서 11유로주고 사온 닭인데 그때 시어머니께서도 기대해도 좋을 맛있는 닭이라고 하셨드랬다.

내가 포크와 나이프로 열심히 발라먹고 접시 구석으로 밀어놓은 작은 뼈를 발견한 자서방이 그건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Y자로 생긴 뼈를 발견하면 둘이서 소원을 빌면서 한쪽씩 잡고 부러뜨리는 문화가 있어. 뼈가 부러졌을때 내가 잡은 쪽이 온전하면 내 소원이 이뤄지는거야. 해보자!"

필리핀에 살때 필리핀 친구들이랑도 항상 했던 놀이다.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손으로 먹으니까 기름이 잔뜩 뭍은 손으로 한다는거? 아 그리고 그때는 소원이 아니라 쌍쌍바처럼 가운데가 예쁘게 부러지면 우정이 영원하다는 뭐 그런거였음-

지저분하지만 양해해주세요~




"와! 와이프 소원이 이뤄지겠네!! 와이프소원이 내 소원이지뭐! 정말 잘했어."

아... 나 소원 비는거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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