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강이 3시간이나 있는 금요일.
친구들과 학생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느긋하게 했다.
우리식대로 이름을 붙이자면 치즈생선가스.
참치파스타 샐러드와 딸기를 함께 받았는데 딸기도 달콤하고 모든 메뉴가 다 맛있었다.
학생식당 덕분에 생선을 자주 먹게 되는것 같다.
식사후 우리는 느긋하게 캠퍼스로 돌아와서 수다를 떨다가 오후수업을 위한 작문과제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웃긴 테라피]를 하나씩 생각해 오는 것이 숙제였다. 수업중에 예로 들려준 테라피는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소변테라피]와 자주 의식적으로 웃는 것을 실천하는 [웃음테라피]가 있었다.
우리끼리 어디선가 들어본 별별 희한한 테라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챗 GPT한테 한번 물어볼까?"
각자 휴대폰으로 챗GPT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았는데 쓸모있는 답변은 받질 못했다.
"챗gpt는 유머감각이 없나봐..."
"아, 질문을 바꿔볼까? 나는 코메디언인데 쓸모없고 웃긴 테라피에 대한 주제로 꽁트를 만드려고 한다..."
오, 과연 답변이 여러가지 주르륵 나왔다.
"아, 챗 GPT 유머감각이 넘치네 ㅋㅋㅋ"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주르르 나열되었다. 심지어 더 없냐고 하니까 더 알려주는데 모두다 기발했다.
고양이 마사지하기, 고양이들이 웃는 영상 시청하기, 유니콘의 모습을 상상해보기, 민달팽이 댄스, 염소합창등등...
우리 세사람은 챗GPT의 답변 목록을 보며 깔깔 웃었다.
"음... 나는 유니콘의 모습을 상상하는 걸 응용해서, 이상형 연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테라피에 대해 써야겠다!"
"나는 염소 합창! 아 근데 프랑스 염소는 어떻게 울지..."
검색해보니 프랑스 염소는 베에에에 (bééééé) 하고 운다고 한다. 그녀는 [베에에에라피] 라고 이름을 지었고 우리셋은 다같이 염소 울음소리를 내며 합창을 해 보았다. 웃음이 빵빵터지는걸 보니 효과가 조쿠먼.
"난 뭘로하지? 다른거 웃긴거 또 없어?"
아이디어가 없어서 고민하는 필리핀친구에게 나는 제일 웃긴걸 골라줬다.
바로, 냄새나는 양말 아로마 테라피.
"이거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좋다고 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냄새나는 양말을 교환하면 강력한 페로몬으로 사랑이 깊어지는 효과도 있다고..."
"여름에는 효과가 더 좋겠지?"
능청스럽게 서로 의견을 주면서 우리는 웃겨서 숨이 찰 지경이었다 ㅎㅎㅎ
오후 수업시간에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대로 각자 작문을 시작했다.
내가 고른 주제는 바로 [이상형의 외모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테라피]
[이상형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보는 이 테라피는 사실 현대에 새로이 개발된 것은 아니다. 이혼이 금지돼 있었던 기원전 1세기의 이집트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불만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테라피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세상에 잊혀졌던 이 기술은 1981년 프랑스인 인류학자 마땅듀퐁의 저서 [시각화의 힘: le pouvoir de la visualisation]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프랑스에서는 크게 붐을 일으켰다. 특히 외로움과 고독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동기부여를 주는 이 테라피는, 다만 너무 자주 사용하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전문가들은 하루에 1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과 혼동하게 되어 영영 상대를 찾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단체 세션 문의는 33 01 02 03 1234로 주세요.]
챗 gpt에게서 힌트만 살짝 얻은건데 나머지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능청스럽게도 잘도 써내려갔다. 혼자 몇번을 큭큭 웃었는지 모른다.
작문이 끝난 후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물론 냄새나는 양말아로마 테라피가 가장 반응이 좋았는데 그녀는 우리가 조언해 준 내용을 정말 진지하게 마치 연구 발표인 것처럼 써놓았다. 그녀의 작문실력은 역시 우리반 탑이다.
나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테라피가 뭔지 투표를 했는데 1등은 냄새나는 양말 아로마 테라피, 2등은 베에에에라피 (그녀가 직접 염소 흉내를 냈을때 다들 한번씩 따라하면서 자연스레 염소 합창이 짧게 이뤄졌다) , 나는 한표 차이로 3등이었다.
우리 모두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챗gpt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집에와서 자서방한테 자랑했더니 자서방은 씨익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건 치팅이지."
"나는 정말 약간의 힌트만 받은것 뿐이야, 그걸로 종이 한장 길게 써내려간 건 내가 혼자 스스로 해낸거라고..."
나는 웃자고 꺼낸 말인데, 자서방은 갑자기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챗gpt가 가져올 변화들(긍정적+부정적)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기술은 너무도 빨리, 그리고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이다.
심지어 유머감각까지 있을줄이야...
덧붙임: 며칠 후, 친구들과 공원 피크닉을 하는 도중에 어쩌다 양말 아로마 테라피를 직접 경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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