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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옛 기억들 위로 새 추억들이 쌓여간다.

by 요용 🌈 2024. 7. 23.

요 며칠째 낭시는 미친듯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휴가기간이라 낭시에 와 있던 버거씨가 오후 4시 내 퇴근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아 오늘 정말 더웠어. 여름에는 정말 불 앞에서 일하는 거 쉽지 않다..." 
 
버거씨에게 투정을 하면서 그 어깨에 머리를 잠시 기댔더니 충전이 되네. 
 
"자 이제 뭐하고 싶어? 말만 해."

"테라스!! 광장 테라스 그늘에서 시원한거 마시고 싶어!"
 
"하하 좋은 생각이네. 광장으로 갈까?"  

시장 앞에 있는 넓은 광장으로 갔더니 테라스 그늘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다. 우리도 그늘을 찾아 빈 테이블로 들어갔다. 

 
나는 달달한 빠나셰(맥주+복숭아 아이스티) 한잔을 시켰고 버거씨는 탄산수를 주문했다. 
 
아... 시원한거 마시니까 살것 같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버거씨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왔고 그 덕분에 나는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머리를 버거씨의 한쪽 어깨위에다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쨍쨍한 풍경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 작년까지만 해도 외출도 많이 안했다? 시내 지리도 잘 몰라서 시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녔었어. 근데 지금 나를 좀 봐. 시내에서 살고 남자친구도 생기고 혼자서 어디든 다 갈 수 있게 되었네?" 
 
참 감개무량하구만. 

버거씨 목에다 내 머리를 바짝 붙이고 있었더니 버거씨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기분좋게 내 머릿속으로 울려왔다. 
 
"별거하기 전에는 시부모님께서 내가 일할 때 몇 번 찾아오셨었어.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괜찮냐고 안부를 물으셨지. 그런데 별거후에는 발길을 아예 딱 끊으시더라. 언제는 이혼해도 우리 관계는 변함없을거라고 새로 만나는 남자친구랑 같이 집에 놀러와도 된다고까지 하셨으면서 막상 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서운하신 것 같더라..."
 
"이상한 분이네 그 시어머니..." 
 
버거씨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을 때 자꾸만 나를 신경쓰이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앞쪽 테이블에 있던 한 아저씨가 자꾸만 나를 흘끔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낯이 익은데 누구지... 나도 자연스레 그 아저씨를 자꾸만 흘끔거리게 되었다. 
 
내가 자주 보던 미드에 나오던 배우랑 닮아서 내가 아는 사람으로 착각한건가...?
 
한참후에서야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자동적으로 고개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 분은 바로 베르나르 아저씨였다. 우리 시아버지 절친이신... 
 
잠시 후 그 아저씨가 아내분과 함께 자리를 떠났을때 나는 버거씨한테 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좀전에 내가 시부모님 얘기하는거 혹시 들었을까? 혹시 내 목소리 컸어?"
 
"아니 안들렸을거야. 신경쓰이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양쪽 다 낭시에 살면서 네가 새출발한 사실은 언제 알아도 알게 될 사실이었을테니까."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계속 쓰이네. 시부모님은 둘째치고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전남편이 왜 나는 걱정되는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훠이 훠이 잡생각아 물러가라... 
 

나는 다크초코, 피스타치오, 티라미수 맛을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잠시 후 나는 버거씨가 사준 아이스크림덕분에 머릿속 찜찜한 생각들을 싸악 비워낼 수가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만병통치약이다. 
 

 
저녁때 우리는 스타니슬라스 광장에서 레이져쇼를 구경했다. 
오래전 엑스 가족과 이걸 처음으로 구경했던 단란한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 레이져 쇼를 볼때마다 버거씨와 함께 구경한 오늘 저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씩 새로운 추억이 옛 기억들위로 쌓여가는 중이다. 
 

 

 

쇼가 끝난 후 광장 여기저기에서 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넓은 스타니슬라스 광장이 공연장으로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오빠 우리 이거 또 보러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