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4월은 학생들의 방학이 있어서 바캉스 시즌이다.
4월이 되자 버거씨는 나에게 바캉스 계획이 있냐고 물어왔다.
바캉스는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수년전부터 바캉스는 내 사전에 없었던 것 같다.
버거씨는 나더러 함께 바캉스를 떠나자고 말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바캉스가 필요한 시점인것 같아. 네가 오케이만 하면 내가 장소를 몇군데 알아보고 알려줄게. 주말에 만나서 의논해 보자."
버거씨는 니스와 카나리아 제도 두군데를 제안했고 나더러 최종선택을 하라고 했다.
"둘중 더 따뜻한 곳으로 가자. 낭시는 여전히 너무 추워. 뜨거운 태양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싶어."
니스보다는 카나리아가 좀 더 따뜻할 것 같아서 카나리아로 골랐다. 물가를 생각하면 경비차이도 별로 안날것 같고.
그나저나 카나리아 제도라...
3년전에 시부모님을 따라서 다녀왔던 곳이네. 이렇게 옛 기억위로 새 추억이 또 한겹 쌓이는구나.
버거씨는 목적지가 정해지자마자 신이나서 며칠동안 호텔과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나라면 귀찮고 성가실 것 같은데 버거씨는 너무 신난다고 했다.
이로서 나는 프랑스 직장 생활 중 첫 휴가를 받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상관없이 (신입이든 장기근속자든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들은 최소 5주의 연차(25일)가 주어진다고 한다. 할렐루야!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여행가방이 없다고 했더니 M이 본인의 캐리어를 빌려주었고 SK도 커다란 여행가방을 빌려주었다. 가족같은 고마운 내 친구들! 그런데 버거씨가 여행 전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나는 바니꺼, 하나는 스폰지밥꺼]
바니는 본인의 애칭이고ㅋ 스폰지밥은 나였다. (나는 출근을 사랑하는 스폰지요용이다ㅋ)
버거씨가 퇴근후에 나가서 내 기내용 가방을 사왔다는 것이다.
가방을 두개 나란히 놓고 찍어보낸 사진에서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귀여운 바니 버거씨.
[우리 휴가는 분명 엄청 재미있을거야!]
[휴가중 서로에게 실망하고 싸우고 올 지도 모르지.]
신이나 있는 버거씨한테 농담처럼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했다.
[네가 나한테 실망하게 되는 케이스라면 가능하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너한테 실망할 일은 없을거야. 아무튼 우리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거야. 확신해.]
어떤 말로도 버거씨의 기분을 망치지는 못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4월 13일 토요일부터 22일 월요일까지 8박 9일간의 휴가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버거씨를 만나러 갔고, 기차역에서 나를 픽업한 버거씨는 바로 프랑크푸르트로 차를 달렸다. 세시간이 걸리는 일정이었는데 버거씨가 미리 샌드위치등 저녁거리를 사온 덕분에 나는 옆에 앉아서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가 있었다. (배고프면 내가 사나워ㅋ진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버거씨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먹을것만 충분하면 나는 언제나 자비롭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고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날 아침에 카나리아 제도로 떠났다. 일전에 시부모님과 다녀온 곳은 카나리아 테네리페섬이었는데 이번에는 라팔마섬이었다. 여러번의 화산폭발로 유명한 이 섬은 좀 더 작지만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여행스타일도 서로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버거씨 역시 아름다운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서서 그것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너무 좋았다.
나에게 휴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휴가지에서 깨달을 수가 있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어느정도 녹아내렸고, 프랑스에 두고 온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때 마음의 여유를 어느정도 충전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시 돌아보니 꼭 필요한 시기에 휴가를 먼저 제안해 준 버거씨에게 참 고맙네.
카나리아 휴가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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