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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수다스럽지만 살갑고 엉뚱한 새 집 주인

by 요용 🌈 2024. 11. 2.

새로 계약할 아파트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이 왔다. 

버거씨가 함께 가 주니 이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다. 

 

오늘도 집주인은 딱 달라붙는 검정색 레깅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허벅지와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서 가끔 시선 처리가 힘들었다. (나도모르게 자꾸 눈이 가네... 눈 자석...) 나만 그런게 아니라 버거씨도 은근히 의식하는 듯한 눈치였다ㅋㅋ 

 

버거씨의 이름과 똑같은 성을 가진 이 남자는 역시나 버거씨랑 참 잘 통하는 듯 했다. 우리 버거씨 만큼이나 대화를 좋아하고 관심사도 다양하고... 말도 많고!

 

"지금 저는 개인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프리랜서죠.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면서 아주 단순하게 살고 있지요. 한때는 저도 금융업에 종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의 단순한 삶에 만족한답니다. 운동도 많이 하요. 아들이 넷인데 그 중 한녀석은 아주 성공적이예요. 파리 민 엔지니어에 우수한 성적으로..."

 

말이 끝이 없었다. 우리 버거씨보다 더한것 같기도 하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집은 사실 제 소유가 아니예요. 제 여자친구는 정말 어리거든요 (Trés jeune).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많이 물려줬는데 아파트가 여러개예요. 그녀 대신에 제가 관리해 주고 있어요." 

 

보통 여친이 어리면 "정말 어리다" 라고 표현을 안하지 않나? 나보다 많이 어리다 뭐 이런식으로는 말해도... 그런데 알고보니 여친이 25살이란다. 그래, 그 정도면 자랑스러워할 만 하네

 

집주인은 정말로 쿨했다. 집 렌탈비도 저렴한데 이사를 한 달이나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열쇠를 벌써 두 개 다 줬다! 

 

"뭐 믿으니까요. 아무때나 와서 치수도 재고 가구도 미리 들여놓고 편할대로 하세요." 

 

자전거를 타고 쿨하게 사라지는 집주인

 

이 남자랑 헤어진 후 집으로 오는길에 내가 버거씨한테 물었다.  

 

"당신도 어디가서 내 여자친구가 어리다고 자랑하니?" 

 

"하하하 내 여친은 이 세상에 최고의 여자니까 당연히 자랑을 많이 하기는 해. 하지만 나이얘기는 잘 안하지. 근데 저 남자는 진짜 자랑스러운가봐. 정말 어리다(Trés jeune)고 말하는거 들었지?ㅋㅋㅋ" 

 

집에 돌아온 후 버거씨는 집주인에게 왓츠앱으로 연락을 시도하다가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발견하고는 빵 터져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헬스장에서 찍은 울끈불끈한 뒷태사진이었다.ㅋㅋㅋ 

 

"야 진짜 이 남자 못 말린다 하하하! 헤맑은 면이 있다고는 느꼈는데 이 사진은 못봐주겠군. 유치해..." 

 

근데 진짜 성난 근육이 어깨며 허벅지뭐 난리가 났다. 그 정도로 어린 여친을 만나려면 뭐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며칠 후 버거씨는 일찍 퇴근하고 오랜만에 헬스장에 가는 길이라고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점심때만 가던 헬스장인데 이제는 퇴근후에 좀 더 자주 가기로 다짐을 했다고 한다. 조깅이나 자전거도 더 자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집주인 때문에 동기부여 됐구나? 왓츠앱 프로필 사진때문인가? 질투나?" 

 

내 말에 버거씨가 미친듯이 웃었다. 

 

"나는 나이 쉰 넘어서 자신의 노화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을 몇 명 알고 있어. 그들은 환상을 가지지. 만일 그들이 충분히 빨리 달릴 수 있다면 그들의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는 환상말이야. 뭐 사실 나도 예외라고는 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 남자가 왓츠앱에 올려놓은 우스꽝스러운 프로필 사진을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나는 저런 유치한 짓은 하면 안되겠다고 말이야. 하하"

 

말은 이렇게 해도 버거씨는 집 주인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다. 분명 좋은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란 사람일거라면서 말이다. 매너도 좋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집 주인이 너무나 엉망이라 시원시원한 집주인을 만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 이사 나간다고 통보했는데도 이 인간이 연락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