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버거씨는 6월에 열리는 고모님의 팔순 생신 파티때문에 미리 들떠있었다.
"사촌들이랑 보졸레에 있는 어느 샤또를 대여했어. 그곳에서 2박 3일동안 지내면서 생신파티를 하게 될거야. 고모들, 고모부들, 사촌들에게 너를 소개하게된다니 나는 너무 행복해."
사촌들과 몇달동안 단톡방에서 파티관련으로 의논을 하고 준비해 온 그 생일 파티가 드디어 지난 주말에 치뤄졌다.
각자 전채요리를 준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버거씨는 평소 가장 자신이 있는 샐러드! 재료를 준비해서 토요일날 나를 픽업하러 낭시로 왔다. SK덕분에 가게에서 사용하던 아이스박스를 빌려서 신선하게 야채(25인분인데 양이 어마어마), 과일, 치즈와 드레싱들을 차에 보관할 수가 있었다.
빡셌던 토요일 근무가 끝난 직 후 우리는 보졸레를 향해 차를 달렸다.
하늘은 좀 흐렸지만 빡셌던 토요일 근무를 끝낸 직후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며 도시를 떠나는 기분은 너무나 상쾌했다.
"긴장되지않아?"
버거씨는 벌써 몇번째 이 질문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묻는거야ㅋ 나 긴장해야 돼?"
"아니아니, 난 네가 긴장할까봐 걱정돼서... 우리 아빠를 포함해서 대가족을 처음으로 만나는거잖아."
"나 긴장안되는데? 그냥 우리둘이 보졸레에 주말여행가는걸로 생각하고 있었어ㅋㅋ"
"하하 그럼 다행이다. 사실 나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야. 우리만 좋은 시간 보내면 되지. 다른 사람들 너무 의식하진 마."
"내가 당신 가족들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되는거지ㅋ?"
"아니 나 지금 완전 행복해.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모두 너를 좋아할거야. 넌 누구나 다 좋아할 사람이니까."
아닌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긴장이 1도 안되는데.
그냥 보졸레라는 도시도 샤또도 처음이라 신날 뿐이었다.
(사실 샤또에 방이 부족해서 다른 가족과 한 방에 머물뻔했는데 버거씨가 그냥 우리는 근처 에어비앤비에서 머물겠다고 사촌에게 말했단다. 알고보니 이 파티를 앞장서서 주관한 사촌네 커플도 방부족으로 근처 다른데서 머물거라네. 부모님들만 각방드리고 사촌들은 두 가족씩 큰 룸에 합쳤다고 한다.)
"나야 뭐 실수하더라도 큰 걱정은 안되는데? 자주 만나는 가족도 아니잖아? 하하하"
내가 웃으며 말했더니 버거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사실이지. 나는 우리 아빠도 일년에 한 번 볼까말까니까ㅋ"
버거씨 아버지는 30년전 이혼과 재혼을 하시는 과정에서 버거씨 남매와 사이가 급격히 안좋아지셨고 누나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얼굴도 안보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번 행사에도 누나는 오지 않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 서운함에 최근 며칠동안 버거씨에게 하소연하셨다.
"어릴적 우리 부모님은 항상 다투셨어.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단 그냥 서로 너무 안맞으셨던거지. 그런데 신기한 건 아빠가 새어머니랑은 절대 다투시는 법 없이 30년간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다는 점이야. 완전히 딴 사람이 되셨다니까? 아버지를 보면서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찾는게 굉장히 중요하다는걸 배웠어. 아버지는 이혼하실 적에 우리 남매가 엄마 편만 든다고 고모들앞에서 우리를 자주 원망하셨고 그 때문에 우리남매는 위로는 커녕 상처만 더 받았지. 아버지는 우리가 성인이 되자마자 이혼하시고 집을 나가버리셨고 그 후로는 찾아오지도, 초대도 않하셔서 이런 가족 행사가 아니면 서로 얼굴 볼 일이 잘 없어.
누나는 나보다 상처가 더 많이 남아있어. 어릴적 누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정말 남달랐는데 그래서 서로 상처가 더 큰듯 해. 나역시 아버지와 화해한지 얼마 안됐어. 한 5년전인가 아버지와 둘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 아버지 원망 많았지만 다 용서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도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시더라. 그 대화 이후에 나는 얼마나 후련했는지 몰라. 아버지는 이제 내 롤모델이야. 물론 자식과 손주들에게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본인께서 새어머니와 둘이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는 모습은 너무 좋아보여. 본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거지 뭐. 나도 아버지처럼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
버거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모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가족을 만나러 가기전 예습을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버거씨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것도 의미가 있었다. 누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의젓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버거씨가 어른스러워보여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칭찬도 해 주었다.
보졸레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전기차라 중간에 충전도 해야 하고 에어비앤비 숙소에 먼저 짐을 내려놓고 가야해서 총 5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지루한 줄 모르고 달렸다. 들뜬 버거씨의 이야기를 듣는것도 재미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앞둔 나도 설레임이 가득했다.
"사촌들 진짜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구나. 다들 안본지 10년씩은 넘은것 같아. 어릴적엔 가까이 살면서 진짜 친하게 지냈는데 어른이 돼서는 만날 일이 잘 없어.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사촌은 20년만에 보게되는거라 정말 설렌다."
그렇긴하지. 나도 어릴적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났던 사촌들을 떠올려보니 참 그립다.
"포르투갈이랑 이탈리아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대. 아참, 작은 서프라이즈! 사촌 중 한 명이 남자친구를 데려오는데 그 남자가 한국인이래! 근데 어릴적 입양아라 한국말은 못한다나봐."
아 그럼 버거씨 그 남자 앞에서 한국어 잘한다고 잘난척 할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버거씨는 혼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러면서 한국어 인삿말을 연습하고 있네ㅋㅋ
설레임 가득한 버거씨의 표정을 보니 나까지 설렌다.
나는 맛있는거 많~이 먹어야지!! 헤헷
이전 포스팅 읽기
걱정말아요 그대
지금 당장 행복하기
판에 박힌 일상은 거절한다고 한다
난이도는 극악이었지만 아름다웠으니...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12) | 2025.06.21 |
---|---|
팔순잔치에서 만난 8살짜리 단짝친구 (10) | 2025.06.20 |
낡은것들이 교체되는 시기인가 (16) | 2025.06.18 |
외국인 친구들에게 만두국수를 끓여줬다. (24) | 2025.06.17 |
프랑스 이웃들 따숩다 (14) | 2025.06.16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10) | 2025.06.15 |
한글 공부에 진심인 이 아저씨 (53) | 2025.06.14 |
프랑스 시골 마을 산책, 매번 새롭다 (51) | 202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