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졸레에 도착하자마자 버거씨가 미리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급하게 팔순잔치가 열리고 있는 샤또로 달려갔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 차로 5분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가 가장 늦게 도착했던가보다. 저녁 9시가 넘었건만 프랑스는 낮이 길어서 참 다행이다.
버거씨 손을 잡고 샤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설레임일수도.
정원 한쪽 구석에 연못이 있는데 오리들이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외 테라스에 모여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버거씨를 보자마자 다들 엄청 반가워서 몰려오는 사촌들, 고모들, 고모부들.
버거씨네 아버지는 1남 3녀중 둘째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생신을 맞은 고모님은 장녀이신데 버거씨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는 누나라서 이번 행사의 의미가 크다고 하신다.
버거씨는 열심히 한 명 한 명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고 나는 버거씨를 놓치지 않기위해 바짝 뒤따라 다니면서 인사를 함께 나누었다. 그러다 버거씨를 놓쳐서 나 혼자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상황이 연출됨.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무겁지 않고 첫만남부터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살짝 놀란점은 10대 조카들이 너도나도 먼저 다가와서 살갑게 인사를 해주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참 반듯하고 의젓하구나 싶었다. 나는 저 나이때 엄마가 인사를 시켜줄때까지 기다렸던것 같은데말이다ㅋ
사촌들은 각자 이 아뻬로 (술안주)를 한가지씩 준비해 왔다고 한다. 버거씨는 샐러드를 준비해 왔는데 이건 늦었으니 내일 먹어야겠네..
샴페인을 마시고 있을때 누군가 내 등을 살짝 두드렸다.
뒤돌아보니 8살 소녀 릴루가 과자 그릇을 내밀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늘 총 몇 명이 왔게요?"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사랑스러운 소녀 릴루.
"몇 명인데?"
"총 28명이예요. 조금전까지 26명이었는데 두사람이 오면서 28명이 되었어요. 제가 처음부터 계속 세고 있었거든요."
혼자 쫑알쫑알 바쁘게 말하던 소녀는 잠시 떠났다가 손에 뭔가를 쥐고 다시 돌아왔다.
"얼굴에 별 붙여줄까요?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은 다 붙이고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어린 소녀부터 할머니들까지 죄다 얼굴에 금별 반짝이들을 붙이고 있었는데 릴루의 작품이었구나.
릴루와 그녀의 엄마이자 버거씨의 사촌 동생인 제랄딘에 이끌려 나는 부엌으로 따라갔다.
부엌에서는 저녁준비로 한창 바쁜모습이었는데 그곳에서 제랄딘 모녀는 내 얼굴에다 금별 판박이를 붙여주었다.
"나처럼 이렇게 양볼, 코에다 왕창 많이 붙이면 더 예쁜데..."
내가 한쪽 광대에다 조금만 붙이겠다고 했더니 릴루가 더 많이 붙이라고 부추겼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써야지."
"다른사람은 다 했는데??"
"음.. 더 하고싶은 사람이 있을수도 있잖아.;;"
내 순발력 칭찬해...
오늘 팔순생일을 맞으신 고모님이 머리에 쓰고 계신 금색 티아라(?)도 릴루가 선물한거라고 한다.
얼굴에 별 반짝이를 다 붙인 후 나는 저녁준비로 바쁜 고모님들께 여쭈었다.
"제가 도울거 있을까요?"
"그럼 바게트라도 썰겠어요?"
한국말로 쓰려니 존댓말이 되었지만 사실 팔순 고모님과도, 8살 릴루와도 전부다 서로 반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위아래 서열이 안느껴지고 그냥 다들 친구 친구.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편안하게 어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 분위기 너무 좋다.
내가 바게트를 가져와서 썰었더니 어느새 내 껌딱지가 된 릴루가 까치발을 하고 서서 내가 썰어논 빵조각을 쟁반에다 차곡차곡 담았다. 벌써 내 단짝이 되었네. 프랑스어로 쉴새없이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 프랑스어 잘 못하니까 천천히 말해야 돼." 라고 했더니 소녀는 이렇게 든든하게 말했다.
"앞으로 모르는 단어있음 나한테 말해. 내가 다 알려줄게!"
아 너무 웃기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ㅋ
잠시 후 저녁식사를 위해 다들 홀로 모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아다니고 있던 버거씨와 이곳에서 재회했다.
그때 나를 뒤따라오던 릴루가 내 손을 잡으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같이 앉을까?"
아ㅋㅋㅋ 너무 웃기다ㅋㅋ
나는 옆에있는 버거씨를 가리키며 릴루에게 대답했다.
"그래. 근데 얘도 같이 앉아야 돼."
소녀의 대답.
"그럼 당연하지! 우리 셋이 같이 앉자!"
버거씨랑 나랑 웃겨서 숨 넘어감ㅋㅋㅋ
야속(?)하게도 목소리가 우렁찬 고모님 한 분이 테이블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렇게 외치셨다.
"자자, 아이들은 이쪽 테이블로! 그리고 연장자들은 저쪽 테이블로! 릴루야, 너는 이쪽으로 와야지."
릴루는 얼굴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시키는대로 아이들이 앉는 테이블로 갔고 나는 버거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셰리, 연장자들은 저쪽으로 가래. 우리 따로 앉아야겠다 ㅋㅋ"
버거씨가 내 말을 듣고는 힝!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하긴 연장자들은 이런 애교 못부림ㅋㅋ 머리만 은발인걸로.
릴루와의 우정 에피소드는 다음에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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