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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by 요용 🌈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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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팔순잔치에서 만난 8살짜리 단짝친구
 

길고 길었던 샴페인 아뻬로를 끝낸 후 28명의 대가족이 저녁 식사를 위해 홀로 들어왔다.
밤 10시반에 저녁 식사라니... 그래도 프랑스 여름해가 길어서 그리 어색한 느낌은 아니다.  
 
세 구역으로 나눠진 테이블에 1세대, 2세대, 3세대가 따로따로 둘러 앉았는데 2세대인 우리 커플은 안타깝게도(?) 자리가 부족해서 어르신들이 앉은 테이블에 같이 앉게 되었다. 버거씨가 은근히 아버지옆에 나를 앉히려고 했던 의도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내 왼쪽에는 버거씨가 앉고 오른쪽에는 버거씨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앉으셨다. 
처음 만난 버거씨네 아버지는 유쾌하고 좋은 분이셨다. 부족하지도 과하지 않은 정도로 나에게 이따금씩 농담을 건네시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셨다. 
 

엉트레로 나온 콩스프. 
고소하고 건강한 맛. 인기 만점이었고 너도나도 한번씩 더 먹겠다고 해서 직접 만드신 고모님께서 매우 흡족해하셨다. 나와 버거씨도 한국자씩 더 먹었다. 

샴페인,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전부다 엄청 맛있었다! 

잠시 후 메인요리로 오리 스테이크가 나왔다. 
마늘을 통채로 함께 구운 모습이 한국인으로서 나를 흡족하게했다ㅋ. 

치즈가 듬뿍 들어간 으깬감자는 그라탕처럼 리치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샴페인에 화이트와인에 이미 알딸딸했지만 맛난 와인을 포기할 수 없어 레드와인까지 일단 받았다. 
다들 레드와인에도 감탄했고 훌륭한 와인과 샴페인을 엄선해서 준비한 버거씨의 사촌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냈다. 

메인 식사가 끝난 후 치즈와 샐러드가 나왔다. 샐러드는 식사할 때 같이 먹으면 훨씬 좋을텐데 왜 맨날 식사가 끝난 후 나오는지. 
 

조용한 1세대(?) 테이블에서 우리 커플이 식사를 하는 동안 등뒤에 있는 2세대 테이블은 내내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가는 우리를 보신 아버님께서는 그쪽 테이블에 계신 연장자 커플(이탈리아가족이었는데 누군지는 잘 모름)에게 우리 커플과 자리를 좀 바꿔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하셨다. 그리하여 아버님 덕분에 우리도 사촌들 테이블에 합석을 하게 되었고 아버님은 흡족하게 말씀하셨다. 
 
"부왈라! 너희도 젊은 사람들이랑 놀아야 재미있지. 늙은이들이랑은 지루해~" 
 
우리가 젊은(?) 테이블로 합석하자마자 사촌들이 손뼉을 치며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고 일제히 우리 커플에게 화제가 집중되었다. 
 
"너네는 만난지 얼마나 됐어?"
 
이 행사를 도맡아 준비한 버거씨의 사촌형제인 그레고리의 질문에 버거씨가 짧게 대답했다. 

"1년 반쯤" 
 
"와! 다들 1년 반이네 우리도 쟤네도 너네도! 1년 반 전에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알고보니 그레고리와 소피 커플도, 제랄딘(릴루네 엄마)과 옆에 있는 방상도 만난지 1년 반 밖에 안된 재결합 가족들이었던 것이었다. 너무 편하게 어울려서 오래된 가족인줄로만 알았는데 방상도 소피도 오늘 가족들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만났어?"
 
이번에는 소피의 질문이었다. 음 늦게 합석해서 다른커플들 스토리는 듣질 못했는데 앉자마자 우리만 인터뷰라니. 불공평하다. 
버거씨는 나에게 대답을 미루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순간 그 홀 전체가 조용해지면서 모든이들의 관심이 내 입에 집중되고 있다는것을 느꼈다.

살짝 압도된 나는 짧게 대답했다.

"...르 봉꾸앙"
(르봉꾸앙은 당근처럼 프랑스판 중고거래사이트 이름임)
 
홀 전체가 웃음 바다가 되었다. 버거씨까지 얼굴이 시뻘게시도록 같이 웃고 앉아있네. 저기요 니얘기거든요. 
 
"대체 뭘 판거야? 아니, 어느쪽이 판매자였던거야?" 
 
"중고 물건 팔면서 유혹하다니,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건데?" 
 
별별 상상을 유발하는 농담들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사람들은 웃느라 배를 잡았다. 결국 간단하게 추가 설명을 해야 했다. 
 
"그때 전남편이랑 갑자기 헤어지게 돼서... 급하게 집을 나와야했거든. 아파트를 알아보는데 그때 이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어. 정말 큰 힘이 되었지."
 
갑자기 엄숙해지는 분위기. 아 어쩔... ㅡㅡ; 
 
들어보니 다른 재결합 커플들도 우리처럼 아픈 과거가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인연을 더 소중히 여길 줄 알게된 듯했다.
 
내가 놀랬던 부분은 구김없는 아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소피의 두 자녀중 둘째는 11살 아들이었는데 가족들과 너무나 살갑게 어울렸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들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예쁨을 받았다. 이번에 처음 만난사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연세가 많으신 고모님 두 분도 남자친구와 함께 오셨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이 내 가족이고 당신들의 가족이라는 사실. 이게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였다. 
 
이혼과 재혼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남다른 한국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심플해서 참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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