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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이 시국에 제사 (단출하고 짧았던)

by 낭시댁 2020. 3. 31.

3주전 우리집에 할머니제사가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언니네 오빠네 아무도 못오고 난생처음 우리식구 세명이서 (나랑 부모님) 조촐한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평일이었는데 엄마아빠는 이 시국에도 변함없이 바쁘셔서 내가 혼자서 전을 부쳤다. ㅠ.ㅠ 

엄마가 저녁에 오시면서 떡과 산적도 사오셨고 탕국과 나물등등을 준비하셨다. 

제사를 지낼때 보통 오빠랑 조카가 한잔씩 올리는데 이번에는 나만 한잔 올렸다. 엄마가 제주인 아빠한테 '나도 한잔 올릴까?' 하셨지만 아빠가 그냥 한번만 하고 끝내자고 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중1때 돌아가셨다. 

어릴적에 할머니가 거의 키워주셔서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다 커서도 할머니 산소만 가면 왜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반면 우리 외할머니는 어릴적 멀리 사셨는데 방학만 되면 외갓집에서 가서 한달 내내 머물렀음. 우리엄마가 방학만 되면 우리 기차표를 항상 미리 끊더라는 ㅎㅎ)

우리 할머니 오셨다가 놀래셨겠네. 아무도 없고 우리뿐이라서... 

제사를 끝내고 밥을 먹는데도 그렇게 조용할 수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항상 조카들때문에 떠들썩 하던 우리집에서 이렇게 조용한 제사라니.. 

내가 말했다.

내가 없었으면 엄마아빠 둘이서 지냈겠네? ㅎㅎ

웃으면서 말했지만 상상해 보니 별로 웃음나는 장면은 아니겠구나.. 

망할 코로나... 냉큼 떠나지못할까.... 

언니네 갖다줄 제사 음식들을 미리 싸놨다가 다음날 언니네집 문고리에 걸어주고왔다.

자전거를 타고 (시청 홈피에 가입하고 한달 회원을 끊고서 자가용처럼 타고 다닌다ㅎㅎ) 배달을 갔다. 

 

 

 

 

나 이거 꼭 해보고싶었다. ㅋㅋㅋ

이 사진을 찍어서 언니한테 카톡으로 메세지와 함께 보냈다.

"주문하신 물품이 문앞으로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보기엔 초라해보여도 안에 내용물은 알차게 담았다. 배랑 떡이며 전이며 울언니 좋아하는 밤도 듬뿍 담고.. 참고로 울 식구들은 전찌개를 좋아한다. 

 

 

 

울언니가 창문으로 내려다 보는데 내가 보란듯이 자전거를 후진하면서 입으로 소리를 냈다.

엘리제를 위한 후진

띠리리리 리리리리리~

창문에 서서 지켜보던 울언니가 빵터짐

멋지게 손을 흔들어주고 자전를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울언니는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로 자가 격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웠던 비보에 지방에 있는 장례식으로 달려갔는데 이틀동안 장래식장에서 아무 음식도 안먹고 내내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다녀온 후로도 2주 동안 스스로 집안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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