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고 돌아온 후에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셨다.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살고 계시지만 코로나때문에 외출을 무서워하시는 할머니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셔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의아했다.
할머니께서는 현관에서 서계신채로 손에 든 마스크 세장을 내미셨다.
"니가 가기전에 이거 주려고.."
에고고.. 할머니 쓰시라고 한사코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받았는데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고 찡하고..
마스크를 계속 끼고계신채로 그거만 주고 바로 돌아서시길래 잠깐 들어오시라고 나랑 놀다가시라고 할머니를 방으로 끌었다.
"나 방금 은행가서 환전했거든. 프랑스 돈 보여줄게 잠깐만 있어봐~"
"오야~ 나도 외국돈 구경 좀 해보자"
"할머니가 전에 김밥값으로 주신 돈으로 환전한거야~ 이걸로 자서방 맛있는거 사줄게"
유로화를 보시며 하나하나 이건 우리돈으로 얼마나 되냐고 물으시며 신기해 하셨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급받은 여권이랑 비자도 보여드리고 프랑스에서 자서방과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사진들도 보여드렸다.
할머니께 나는 이렇게 사진을 종종 보여드리는데 굉장히 흥미로워하신다.
"내가 이십년만 젊었어도 따라 다니면서 세상 구경할것인데..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네... 우리 손녀처럼 세상 구경좀 하고 살것을..."
"어휴 지금이라도 같이 가면 되지~ 엄마랑 다 같이 담에 놀러가자. 코로나 끝나면-"
"말만 들어도 나는 좋다.."
티비에서는 코로나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이것저것 프랑스 상황에 대해 물어보셨고 나는 아는대로 설명해 드렸다.
"할머니 걱정하지마. 자서방말이 저기가 실제 그렇게 위험할 것 같으면 나더러 오라고 하지도 않았대~ 시부모님도 걱정말고 오라고 하셨고~ 물론 거기는 지금 외출도 금지하고 있지만 뭐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집에서 있어야지뭐. 그편이 안전하기도 하고.."
"몇시에 비행기 출발인데?"
"오후 한시-"
"그럼 새벽에 도착하겠네?"
음.. 오후 한시에 출발한 후에 열두시간을 날아서 현지시간으로 저녁 6시 반에 도착하는 이유를 아주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고 열심히 이해를 시켜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마침 내가 아침에 만들어 둔 샌드위치가 두개 있어서 싸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니가 가면 이런건 이제 누가 해 주누... 니가 가고 나면 이 집에 놀러 올 일도 없을것 같은데..."
자주 놀러오겠다고 약속은 드렸지만 지난 20년간을 돌아봐도 이번만큼 할머니랑 오래 자주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이번에는 2년연속으로 생일상도 내가 차려 드릴수가 있어서 두고두고 감사해 할 것 같다.
내년에는 어렵겠지만 내 후년에는 미역국 또 끓여드릴게요. 건강하게만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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