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갔다.
버거씨네 정원에 아침부터 느껴지는 은은한 꽃향기가 너무 좋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아침 공기 덕분인것 같다.
핀지 얼마됐다고 벌써 시들 채비를 하고 있는 꽃들.
뭐 그리 급하다고...
아침 준비를 하던 버거씨가 안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 비가 많이와서 풀이 빨리 자랐어!"
"오 고뤠? 그럼 깻잎도 많이 컸겠네!"
깻잎 심은곳으로 달려가는데 버거씨에 아마 그럴거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등뒤로 멀어졌다.
기대를 안고 달려갔는데
두둥
깻잎이 어디있지?
분명 지난주에 새싹들이 올라오는걸 봤는데...
허걱!
뭐야
이거 뭐야... ㅠ.ㅠ
엉엉 우는 소리를 내면서 안으로 들어왔더니 버거씨가 깜짝 놀라서 하던일을 멈추고 물었다.
그리고 내가 찍어온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줬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버거씨.
두눈을 이리저리 허공에 굴려보면서도 선뜻 상황 파악이 안되는 표정이다.
이럴리가 없는데...
"내가 자른건가...?"
그럼 내가 잘랐겠니??!!
기억에는 없지만 이 집에 자기밖에 없었으니 결국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일거라고 인정을 하는 버거씨. 여전히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림.
"내가... 잘랐나...?"
"비가 많이와서 잘 자랐다며! 그래놓고는 내 깻잎 머리를 다 잘라놨어!"
버거씨는 미안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잠시 후 테라스에서 누나네 부부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내가 깻잎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다들 아침부터 빵터졌다. 미안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버거씨를 향해 우리 세사람은 계속해서 장난으로 공격했다.
"비가와서 풀이 빨리 잘랐네. 어? 이건 뭐지? 잡초!! 잘라야지! 싹둑 ㅋㅋ"
"프랑스에서는 그 씨앗 못구한다며? ㅋㅋ 너 어쩔거야ㅋㅋ 잘 키워준다고 약속해놓고 잘라버렸어ㅋㅋㅋ"
점점 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못들고 있는 버거씨를 놀리는 재미에 아침부터 엔돌핀 충만하다.
"걱정마 그럴수 있지."
내가 웃음기를 거두고 따뜻하게 버거씨에게 말을 건네자 버거씨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렇게 말을 덧붙여서 버거씨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다들 또한번 빵터짐
"나이들면 그럴수 있어. 어제 한 일도 까먹는다더라..."
ㅋㅋㅋㅋㅋ
기어들어가는 버거씨의 항변이 이어졌다.
"나는 진짜 맨날 물도 주고 살펴봤다고..."
"맨날 물주다가 하루 아침에, 어 이거 뭐지? 잡초다! 댕강! ㅋㅋ"
점점 더 고개를 깊이 숙이는 버거씨때문에 너무 웃어서 턱이 얼얼했음ㅋ
"죽은건 아니니까 저기서 자라나는 녀석들은 내가 책임지고 보살필게. 약속해."
버거씨의 다짐이 아주 굳세다.
믿어보겠어 ㅋㅋ
매형은 와중에도 계속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웃고 있었음.
"저래놓고, 어? 이거 뭐지? 잡초다! 가위가 어딨더라 ㅋㅋㅋ"
검은색 바게트가 뭔가했는데 알고보니 초코빵이었다. 다크초콜렛 덩어리가 여기저기 박혀있어서 아침 식사로 커피랑 먹기에 너무 좋았다. 치즈케이크는 말할것도 없고~!!
깻잎들은 예상치못한 시련을 겪고 있지만 사과들은 벌레 시련을 극복해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버거씨는 깻잎에다 정성껏 물을 줬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또 놀리고 웃었지만 버거씨는 아랑곳하지 않았음.
오후에도 틈만나면 깻잎으로 달려가서 그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버거씨의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쟤 또 깻잎보러갔다ㅋㅋ"
"기도 하고 있는걸거예요. 얘들아 꼭 살아나라 제발..."
"아, 토토로! 토토로처럼!!"
누나네 부부도 토토로 명장면을 아는구나 ㅋㅋㅋㅋ
근데 반전이 있었다.
온종일 버거씨를 놀렸는데 알고보니 민달팽이의 소행이었다는 ㅋㅋㅋ
밤 10시가 다 됐을때 버거씨한테서 화상전화가 왔는데 (오늘 온종일 깻잎만 지켜본 듯 하다 ㅋㅋ) 민달팽이 두마리가 깻잎싹 위에 몸을 덮고 앉아서 남은 줄기를 파먹고 있는 장면을 라이브로 보여주었다.
"봤지?? 내가 그런게 아니야! 내가 아니었어! 민달팽이라고! 얘네가 다 먹은거야. 나는 정말로 결백해!! 와하하하 내가 아니라고ㅋㅋ"
딱 하루 억울하게 유죄선고받고 마음 고생하다가 드디어 혐의를 풀어서 세상 후련하다는 듯 큰소리로 웃는 버거씨.
음... 나는 민달팽이가 더 걱정인데 ㅡㅡ;
"걱정마. 나만 믿으라고! 내가 화분에다 옮겨 심을게."
오해해서 미안했어요...
그래도 덕분에 많이 웃어서ㅋㅋ
**그러고보니 오래전 같은 일로 나와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의심했던 사건도 떠오른다. 민달팽이가 이렇게나 예리하게 끊어먹을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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